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034
한자 密陽 南溪書院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3길 43-16[두곡리 36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지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04년연표보기 - 밀양 남계서원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연표보기 - 밀양 남계서원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7년 - 밀양 남계서원 강당 개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4년 - 밀양 남계서원 쌍수당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9년 - 밀양 남계서원 사당 완공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3월 11일연표보기 - 남계서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8년 12월 20일연표보기 - 남계서원에서 밀양 남계서원으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남계서원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밀양 남계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3길 43-16[두곡리 366]지도보기
원소재지 남계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3길 43-16[두곡리 366]
성격 서원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강당]|겹처마 맞배지붕[사당]
정면 칸수 6칸[강당]|3칸[사당]
측면 칸수 1.5칸[강당]|1칸[사당]
관리자 청도김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9호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밀양 남계서원(密陽南溪書院)영헌공(英軒公) 김지대(金之垈)[1190~1266]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김지대는 고려 고종 때 문신이면서 거란과의 전쟁에 참전한 인물로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시조이다. 김지대는 고려의 10대 문인 혹은 7인의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동문선(東文選)』에도 김지대의 작품이 전해지며, 초대 진주목사를 지냈던 연유로 전라북도 진주시 촉석루에 김지대의 시(詩)가 게시되어 있다. 1217년(고종 4)에 거란이 침입하자 병환 중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가 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참전 당시 방패 머리에 써 넣은 시가 유명하다. 시의 내용은 “국환신지환(國患臣之患), 친우자소우(親憂子所憂), 대친여보국(代親如報國), 충효가쌍수(忠孝可雙修)[나라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려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 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이다. 남계서원의 사당 충효사(忠孝祠)와 강당 쌍수당(雙修堂)의 명칭은 ‘충효가쌍수(忠孝可雙修)’라는 마지막 시구(詩句)에서 따왔다.

[위치]

밀양 남계서원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다. 청도면 행정복지센터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열왕산의 동쪽 구릉 끝자락에 동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변천]

밀양 남계서원은 1704년(숙종 30)에 고을의 유림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당이 훼철되었으나 강당을 후손들이 보수하거나 중창하여 사용하였다. 1907년(순종 1) 강당을 새로 지었으며 1954년 다시 후손들이 낡은 강당을 철거하고 쌍수당으로 확장하여 중건하였다. 1986년부터 서원 복원을 추진하여 1989년에 사당을 완공하였다.

[형태]

밀양 남계서원은 강당 영역과 사당 영역, 관리사인 고직사(庫直舍) 등 세 영역이 좌측으로부터 병렬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 영역은 강당인 쌍수당을 중심으로 전면 좌우에 동재(東齋)인 원청재(元淸齋)와 서재(西齋)인 강의재(岡毅齋)가 있다. 정면에는 솟을삼문 형태의 상덕문(尙德門)이 배치되어 있다. 사당 영역은 사당인 충효사를 후변부에 두고 정면에 내삼문인 대보문(代報門)을 두었으며, 전면에 전사청(典祀廳)을 배치하였다.

고직사 영역은 고직사와 대문채[尙德門]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6칸, 측면 1.5칸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현황]

밀양 남계서원은 1996년 3월 11일에 남계서원이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밀양 남계서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계서원은 고려 후기 인물을 조선 후기의 후손들이 기억하는 방식을 보여 주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 거리가 상당하지만 후손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충과 효를 실천한 인물을 소환하여 기리면서 그 가치를 지켜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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