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릉바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1452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시대 조선/조선,현대/현대
집필자 류경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3년 - 「우릉바위」 밀양군에서 발행한 『미리벌의 얼』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9년 12월 30일 - 「우릉바위」 밀양시에서 발행한 『밀양설화집』1에 수록
관련 지명 우릉바위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암석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이 진사 딸|봉순이|동네 처녀들
모티프 유형 처녀로 죽은 원혼|천벌 받은 몸종|바위로 변한 처녀|암석의 유래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있는 우릉바위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우릉바위」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의 뒷산 기슭에 있는 우릉바위에 얽힌 이야기이다. 우릉바위는 단오에 그네를 타다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떨어져 죽은 처녀가 변한 바위라고 전한다. 비가 오고 번개가 치는 날이면 애절하게 우는 바위라고 하여 사람들이 ‘우릉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우릉바위」의 채록 시기와 구연자는 알 수 없으나, 1983년 밀양군에서 발행한 『미리벌의 얼』에 수록되어 있다. 또 2009년 밀양시에서 발행한 『밀양설화집』 1권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시대 선조(宣祖)[1552~1608] 때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에 이 진사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진사에게는 예쁜 딸이 한 명 있었다. 어느 해 단오에 동네 처녀들이 뒷산 기슭 고목나무에 그네를 매어 타는 모습을 본 이 진사의 딸은 몸종 봉순을 데리고 뒷산 기슭으로 올라가 그네를 탔다. 그네를 밀어 주던 봉순은 몸종으로 태어나 그네 한 번 타 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은근히 심술이 났다. 그래서 더 밀어 달라는 주인집 딸의 말에 있는 힘을 다하여 그네를 밀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넷줄을 맨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이 진사의 딸은 저 아래로 굴러떨어져 죽고 말았다.

동네 처녀들이 이 진사 딸의 몸을 부둥켜안고 애타게 부르는데, 갑자기 동편 하늘로부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번개가 치기 시작하였다. 놀란 동네 처녀들은 숨진 처녀를 버려두고 산기슭의 작은 초가집 추녀 밑으로 피신을 하였다. 한참 뒤 먹구름이 걷히고 번개가 그쳤을 때, 이 진사 딸의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벼락을 맞아 죽은 봉순이의 시신만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이 진사 딸이 숨진 자리에는 큰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났다. 그 후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바위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우는 여인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바위를 일컬어 ‘우는 바위’, 즉 ‘우릉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우릉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처녀로 죽은 원혼’, ‘천벌 받은 몸종’, ‘바위로 변한 처녀’, ‘암석의 유래’이다. 「우릉바위」는 암석이 생겨난 유래와 이름이 붙여진 유래를 알려 주는 전설이다. 암석의 생성은 처녀의 억울한 죽음과 연관이 되는데, 처녀가 죽은 원인이 몸종의 질투 때문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우릉바위」는 전통 사회의 신분제 속 단옷날 그네뛰기 행사와 연관 있는데, 그네도 마음대로 탈 수 없었던 몸종의 질투는 주인집 딸과 자신의 쌍방의 죽음을 초래하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가해자나 피해자는 모두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분제 사회에서 몸종의 질투는 천벌을 받고, 주인집 딸의 죽음은 항구성을 지니는 암석으로 형상화되어 영원히 기념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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