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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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仁周 |
영어공식명칭 | Seo In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만오 |
추모 시기/일시 | 1777년 - 서인주 세덕사에 위패 봉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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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세덕사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달성(達城) |
[정의]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달성(達城). 귀계(龜溪) 서침(徐沈)의 후손이다. 서침은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전라도 처치사(全羅道處置使)를 지낸 인물로, 조선 세종 조에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와 전의소감(典醫少監)을 지냈다.
[활동 사항]
전라도 무주 출신인 서인주(徐仁周)는 효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 언제나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는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상중(喪中)의 일을 처리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심이 있어서였는지 서인주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아버지의 삼우제(三虞祭) 날이었다. 서인주가 아버지의 산소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임자 없는 소를 한 마리 만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후 그 소가 쌍둥이 송아지를 잇달아 낳자 그 송아지를 제수(祭需)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서 서인주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서인주는 또 큰 흉년이 들면 곡식을 풀어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 구휼하였고, 병든 사람이 있으면 정성껏 돌봐주었다. 이에 사람들은 서인주를 효자이면서도 선인(善人)이라고 불렀다.
[상훈과 추모]
서인주가 죽자, 조정에서는 자헌대부 지중추부사(資憲大夫知中樞府事)라는 직을 내렸다. 1777년(정조 l)에 이르러서는 세덕사(世德祠)에 서인주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세덕사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에 있는 서씨의 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