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2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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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景公所 |
영어의미역 | Ganggyeong Mission Chapel |
이칭/별칭 | 강경이공소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순옥 |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었던 천주교 공소.
[변천]
강경 지역이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에 처음 기록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자료집에 의하면, 1883년 당시 전라도 지역을 관할하던 리우빌 신부(Liouville, 한국명 유달영(柳達榮), 파리외방전교회)가 방문하여 사목 활동을 한 공소 중 은진 지방에 강경공소가 나타난다. 1883년 4월 작성된 강경공소의 신자 상황은 사규고해 5명, 사규영성체 5명, 재고해 62명, 재영성체 61명, 교우 자녀 보례자 1명, 견진자 5명, 병자성사 1명 등 총 140명이었다.
이후 강경공소는 함열 지방으로 관리되다가 1885년에는 두세 신부의 관할에 속하는 강경 지역으로 분리되었으며, 당시 소속된 신자는 131명이었다. 강경공소는 신부를 모시지 못하는 공소의 특성상 교회 상황에 따라 관할이 바뀌었다가 1897년 베르모렐 신부의 부임으로 본당으로 승격된 화산본당(일명 나바위본당)에 소속되었다. 1899년 강경포 교안사건을 겪은 뒤 교세가 확장된 강경공소는 1945년 강경본당으로 독립하였다.
[의의와 평가]
강경공소는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최초로 등장하였던 한국천주교회로 강경본당 설립의 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