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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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長生不遷位祭祀 |
영어의미역 | Immutable Position Ritual of Gim Jangsaeng |
분야 | 종교/유교,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문준 |
성격 | 불천위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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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음력 8월 3일 |
의례장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염수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후손들이 행하는 김장생의 불천위제사.
[개설]
김장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광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의 아들이며 김집(金集)의 아버지이다.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 등을 배웠으며 20세 무렵에는 이이(李珥)에게 사사했다. 예학(禮學)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이론적 배경은 이기혼융설(理氣混融說)이다. 김장생의 예학론은 양란(兩亂) 이후 혼란해진 국가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통(統)을 바르게 하는 것’, 즉 정통(正統)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정통주의적 예학론은 이후 집권 세력의 정치 이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율곡 이이(李珥)의 학통을 이어, 아들인 김집을 비롯하여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윤선거 등 당대 최고의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사후에 문묘에 배향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사당은 김장생의 종손이 거주하는 집 뒤편에 있으며 2007년도에 다시 개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맞배지붕을 올리고 방풍판 시설을 하였다. 주변은 낮은 담으로 둘러져 있으며 문 앞 양쪽에 오래된 향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절차]
매년 음력 8월 2일이 입제일이며 제사는 8월 3일 새벽 3시 30분에 시작하여 새벽 5시경에 마치고 철상한다. 제사 음식은 하루 전에 유사들이 장을 보아 오후 1시부터 제수를 준비하여 오후 7시 정도에 준비를 마친다. 제수 장만 준비는 가까이 사는 문중 부인들이 모여서 한다. 제상 차림은 밤 12시부터 시작하며 안채 대청에는 제사를 모시기 위해 흰 앙장을 치고 그 앞에는 제상을, 그리고 제상 앞에는 향상을 놓는다. 제상은 합설로 차리며 제례복으로 참례자 전원이 흰 도포를 입는다.
이어서 제사를 위해 사당에서 신주를 모시어 내는 출주(出主)가 행해진다. 종손이 청사초롱을 든 제관들을 앞세우고 사당에 가서 오늘이 기일임을 고하는 축을 읽고 신주를 모셔 오며 청사초롱은 제사 내내 대청 기둥에 걸어 놓는다. 이어 신주 앞에서 절을 하는 참신(參神)이 행해진다. 신주를 대청에 모신 후 참례자 모두 두 번 절한다. 신주가 아닌 신위일 때는 분향강신 후에 참신을 하지만 신주를 출주해 모시면 참신례부터 한다.
분향강신은 처음 잔을 올리기 전에 신을 내리게 하기 위하여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모사(茅沙) 위에 붓는 절차를 말한다. 그리고 진찬은 강신(降神) 다음에 어(魚)·육(肉)·국·떡·메 등의 주식(主食)을 제상(祭床)에 차리는 절차를, 초헌은 첫 술잔을 신위 앞에 올리는 철차를, 독축은 축문(祝文)을 읽는 절차를 말한다.
종손이 향을 피우고 집사가 따라 주는 술잔을 모사에 세 번 나누어 부어 혼백을 모신다. 종손 혼자 두 번 절한 후 떡과 적, 탕과 밥, 국을 상 위에 올린다. 종손이 집사의 도움을 받아 첫 잔의 술을 올린 후 축관은 제주를 향해 앉아 축을 읽는다. 축관이 축문을 읽으면 종손은 혼자 두 번 절하고 퇴주 후 적을 물린다.
아헌은 둘째 술잔을 신위 앞에 올리는 절차를, 그리고 종헌은 셋째 술잔을 신위 앞에 올리는 절차를 말한다. 김집 종가의 종손이 두 번째 술잔을 올리며 순천김씨 할머니의 자손이 세 번째 술잔을 올린다. 첨작은 종헌으로 드린 잔에 다른 제관이 다시 술을 가득히 채워 붓는 절차를, 그리고 삽시정저는 숟가락을 메에 꽂고 젓가락을 시접 위에 올려놓는 절차를 말한다. 종손이 양위분 잔에 술을 부어 놓은 다음 숟가락을 메의 중앙에 꽂고 젓가락을 가지런히 고른 뒤 시접 위에 올려놓는다.
합문은 제사 음식을 물리기 전에 잠시 문을 닫거나 병풍으로 가리어 막는 절차를, 계문은 술을 다 부은 다음 숟가락을 제삿밥 가운데 꽂고 젓가락 끝이 동쪽으로 가게 놓은 후에 닫았던 방문을 여는 절차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합문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거나 병풍으로 제상을 감싼 후 제주와 참석자들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채 아홉 수저를 먹을 동안(5~7분) 기다리는 형식으로 이루진다.
그러나 사계 김장생의 불천위제사는 안채 대청에서 치러지는 관계로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는 대신 제상 뒤에 처진 병풍을 ‘ㄷ’자 모양으로 만들어 제상을 감싸고 앞쪽은 걷어 올린 앙장을 내리는 방식을 취한다. 즉 제상을 병풍으로 감싼 후 종손과 몇 명이 마루에 앉아 있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마루 한편 옆에 서서 기다린다. 그리고 앙장을 다시 걷어 올리고 제상 위에 있는 병풍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형식으로 개문이 이루어진다.
진다(進茶)는 차나 숭늉을 올리는 절차로 사계 김장생의 불천위제사에서는 숭늉을 올리며 참석자들이 공수한 채 국궁의 예를 취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그 다음에는 밥을 한 수저 떠서 숭늉 그릇에 말고 수저는 시접그릇에 놓고 메 그릇의 뚜껑을 덮는 것으로 철시복반(徹匙復飯)의 절차가 이루어진다. 사신(辭神)은 영혼을 전송하는 절차로 제관 이하 참석자 모두 두 번 절한 뒤 축관이 축문을 불사르고 신주를 다시 사당으로 모신다. 그리고 제상을 물리는 철상이 이루어지나 사계 김장생의 불천위제사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은 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축문]
축문은 『사례편람』의 내용과 동일하다.
[현황]
현재 제사는 김장생 종가 정면에 있는 건물인 염수재(念修齋)에서 지내고 있으며 참여 연령대는 주로 60대 이후, 참여자 수는 현재에도 40~50여 명 정도에 이른다. 안채가 정면인 대부분의 집안과 달리 대문 정면에 제사 공간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염수재 좌측 위로는 김장생과 두 부인을 모신 불천지위 사당채가 있다. 그리고 안채는 2008년 현재 85세인 종부 홍용기가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