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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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金氏 |
영어의미역 | Gimhae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원]
김해김씨는 가락국을 세운 김수로왕(金首露王, 42~177)을 시조로 한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김수로왕은 48년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에 담겨진 황금 알 6개 중에서 태어나 아도(我刀), 여도(汝刀), 피도(彼刀), 오도(五刀), 유수(留水), 유천(留天), 신천(神天), 오천(五天), 신귀(神鬼) 등 구간(九干)에 의해 추대되어 가락국의 왕이 되었다. 금합에서 태어났다 하여 김(金)을 성씨로 삼았고, 이후 후손들이 가락국이 세워진 김해를 본관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락선원세계(駕洛璿源世系)』에 의하면 김해김씨는 김수로왕의 11세손 김무력(金武力) 때부터 크게 번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무력은 신라에서 어간(魚干)의 벼슬을 지내면서 뛰어난 무장으로 이름을 높인 인물이다. 김무력의 아들인 김서현(金舒玄)은 신라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과 혼인함으로써 신라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고 각간과 대양주도독을 지냈다. 그리고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金庾信)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워 벼슬이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죽은 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면서 김해김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이후 김해김씨는 경주김씨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명문거족으로 번성해 왔다. 『갑인보』에는 김녕군(金寧君) 김목경(金牧卿)의 자손들이 충청남도 대덕 지역에 살았고, 김영견(金永堅)의 동생 김영서(金永瑞)의 후손이 충청남도 금산 등지에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해김씨는 우리나라에서 그 수가 가장 많은 성씨이며, 논산시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입향경위]
기록의 부재로 김해김씨의 논산 입향조와 정확한 입향 시기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시대 생원·진사의 명단을 기록한 『사마방목(司馬榜目)』에 김오보(金吳甫)가 니산현(현 논산시 노성면)에 살고 있었으며, 1603년(선조 36)에 향시를 본 것으로 기록된 것을 볼 때 그 이전부터 김해김씨가 니산현을 중심으로 세거해 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노성향교의 문서를 통해 김해김씨가 노성향교에 드나들었던 사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0년에 편찬된 『조선의 성』에서는 김해김씨의 집성촌으로 성동면 삼호리·광석면 갈산리·노성면 죽림리·양촌면 채광리를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에는 은진면 방축리 일대에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황]
1995년 기준으로 논산 지역에 거주하는 김해김씨는 논산읍에 1,006가구, 연무읍 728가구, 강경읍 494가구, 양촌면 251가구, 광석면 243가구 등 총 3,594가구로 논산 지역 전체 가구 수의 9.69%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관련유적]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에 양무공 김완(金完)의 영정을 배향한 양무공 영당이 있다. 노성면에 세거하던 후손들이 1956년 건립한 것으로 1998년 논산시 향토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