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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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集不遷位祭祀 |
영어의미역 | Immutable Position Ritual of Gim Jip |
분야 | 종교/유교,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문준 |
성격 | 불천위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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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음력 5월 13일 |
의례장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의 김집 종손 집에서 행하는 김집의 불천위제사.
[개설]
김집(金集, 1574~1656)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며 송시열과 송준길의 스승이다. 영특하고 학예에 뛰어나 l8세 때 진사가 되었으며 광해군 때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였다. 이후 인조반정 뒤 등용되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아버지와 더불어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성하였고, 부자가 나란히 문묘에 배향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김집의 종손 집 왼쪽 뒤편에 사당이 있다. 본래 이 사당은 돈암서원 옆에 건립되어 있었으나, 1880년(고종 17) 돈암서원이 현 위치로 이건하자 김집의 종가 뒤편에 옮겨졌다. 김집 종가의 담과 연결된 문을 지나면 사당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맞배지붕을 올리고 방풍판 시설을 하였다.
[절차]
제사 하루 전날에 안채의 대청에 신위를 마련할 준비를 하며 앙장(仰帳)과 병풍을 치고 자리를 깔며, 교의, 제상, 향탁, 향로, 향합 등을 준비한다. 저녁에는 종손 또는 도유사가 중심이 되어 헌관 및 축·집사자 등을 정한다. 제사 당일 새벽 2시 30분경 진설도(陳設圖) 없이 1차 진설(陳設)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의 절차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1차 진설이 끝나면 종손 이하가 사당으로 가서 신주를 모셔오는 절차가 진행된다. 제주인 종손이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향을 피우고 감실문을 닫고 출주고사(出主告辭)를 고하며 그동안 모든 참사자가 부복한다. 출주고사가 끝나면 감실에서 신주를 신주독에 거두어 정침에 모신다. 그리고 주독을 열고 신주를 내어 교위 위에 모시고 신주갑을 벗겨 계독(啓櫝) 의식을 행한다.
조상을 맞이하기 위하여 참례자 전원이 참신 재배를 하고 하늘과 땅에서 조상의 혼백을 인도하는 강신(降神) 절차를 이어간다. 제주가 올라가면 주부가 따라 올라 진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요즘에는 대부분 집사자가 맡아 생선과 고기, 떡, 메와 갱을 받들어 올린다.
종손이 신위전에 나아가면 집사자 한 사람이 술 주전자를 들고 그 오른쪽에 서고 종손은 고위의 잔과 잔 받침을 받들어 신위 앞에 동향해서 서며 집사자가 서향하여 잔에 술을 따르면 종손은 이를 잔으로 받아 올려놓는다. 축관이 축판을 들고 제주의 왼쪽에 서서 무릎을 꿇고 축문을 읽는다. 독축이 끝나 축관이 일어나면 종손은 재배하고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집사자가 퇴주기에 술을 물리고 잔을 이전 자리에 놓는다.
일반 기제사에서 아헌은 종부가 하도록 되어 있지만 불천위제사의 경우에는 불천위 아들의 후손이 헌관을 맡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헌은 대부분 종손의 동생이나 제관의 연장자가 하며 불천위의 둘째 아들의 후손들이 하기도 한다. 종헌은 불천위 아들의 형제 중의 장남이나 친척 중의 연장자가 하기도 한다. 초헌과 아헌에는 다음의 헌작을 위해 재배 후에 바로 술을 퇴주기에 물리지만, 종헌에는 다음의 유식을 위해 술잔과 적을 그대로 둔다.『사례편람』에도 종헌에 퇴주와 적을 물리지 않는다고 명시하였다.
집사자가 숟가락을 밥 가운데에 꽂고 젓가락을 시접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이어서 합문(闔門)이 진행되는데, 합문은 흡향을 하시도록 헌관이 재배 후 병풍으로 재상을 닫는 의식이다. 김집의 불천위제사에서는 대청마루에서 제를 올리므로 문이 없어 병풍으로 제사상을 가리고 참사자 전원이 돌아서 있거나 마당으로 나가 있는 것으로 합문을 대신한다.
이어서 기침을 세 번한 후 흡향이 끝났음을 알리고 문을 열며 제주와 집사는 갱을 물리고 숭늉을 받들어 올리는 진다(進茶) 또는 헌다(獻茶)를 행한다. 이때 숭늉 드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절하지 않고 서서 조금 기다리거나 또는 몸을 굽히는 국궁(鞠躬)을 한다. 잠시 후에 집사자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시접에 내려놓고 메 뚜껑을 닫는다. 제사가 끝나고 제주 이하 모두 재배(再拜)한 후 제주가 올라가 신주를 받들어 신주독을 앞에 들리고 사당으로 다시 모신다. 신주를 이전 자리에 편안히 모시고 발을 내려 문을 닫고 물러난다. 그리고 제상을 물리는 철상이 이루어진다.
[축문]
축문은『사례편람(四禮便覽)』의 내용과 동일하다.
[현황]
사당과 종가를 갖추고 있으며 2002년의 경우 도유사는 김형중이, 전례(典禮)는 김판수와 김용찬이, 초헌은 종손이, 아헌은 종부가, 종헌은 종중의 동생이나 집안의 연장자가 각각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