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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면 오강리 괴촌형 집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033
한자 光石面五岡里塊村型集村
영어의미역 Agglomerated Settlement in Ogang-ri Gwangseok-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
집필자 이영구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 있는 가옥이 무질서하게 밀집되어 있는 촌락.

[형성 및 변천]

논산 지역의 농촌은 거의 전부가 집촌이며, 집촌 중에서도 괴촌이 지배적이다. 괴촌은 가옥이 불규칙하고 무질서하게 밀집되어 있는 촌락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의 다른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산 지역 농촌 마을은 대부분 집촌, 그 중에서도 괴촌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을 수 있다.

첫째, 논산 지역의 농촌들이 대부분 무계획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논산의 농촌들은 대개 처음에는 한두 가구로 시작하여 수백 년 동안 그 자손들이 분가하고, 간헐적으로 새로운 가구가 이입하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계획적인 가옥 배치란 처음부터 불가능했으며, 새로운 가구가 생겨날 때마다 땅의 생김새와 토지 소유 관계 등을 고려하여 한 채씩 가옥을 건축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괴촌형 집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촌락의 입지와 관련한 지형적 원인을 들 수 있다. 논산의 농촌은 대개 구릉지나 평야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구릉지의 경우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평지에 비해 가옥을 짓기에 적당한 대지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평탄한 땅은 농경지로 확보해야 했으므로 가옥이 불규칙하게 분포할 수밖에 없었다. 곡저평야의 경우도 수해를 피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곡저평야보다는 평지와 구릉지가 만나는 접경지대를 택해야 했으므로 구릉지 기슭에 가옥들이 집중하게 되었다.

셋째, 농업 형태와의 관계이다. 논산 지역의 농업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밭농사 위주에서 벼농사 위주로 점차 변화되는데, 이러한 벼농사 위주로의 농업 형태 전환이 집촌화를 조장하였다. 그것은 벼농사의 특수성에 기인하는데, 벼농사는 다른 농사와 달리 수리 시설의 축조·관리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앙기·김매기 등 특정 시기에 집중적인 노동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조직화·공동화가 필수적이었으며, 이것이 집촌화를 촉진시키는 데 커다란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넷째, 동족 결합의 영향이다. 동족 결합력이 괴촌화의 절대적인 동인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집성촌은 거의 대부분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상숭배 전통, 상속 제도에 의한 경지 규모의 영세화 등에 의해 종가를 중심으로 괴촌이 형성되어 왔다. 현재 논산의 집성촌 대부분이 도시화·산업화의 영향으로 해체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상당수의 농촌이 집성촌의 범주에 속했으며, 이들은 예외 없이 괴촌의 형태를 띠고 있다.

농업 활동은 지형·토양·기후조건 등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자연환경에 따라 재배 작물의 종류, 토지 이용의 형태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농경지의 이용 상태를 크게 논과 밭으로 나누어 왔고, 이에 따라 농촌은 논농사를 주로 하는 촌락과 밭농사를 주로 하는 촌락으로 대별된다. 이러한 차이는 촌락의 형태와 경관에 많은 차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사회구조 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논산 지역에서 괴촌의 형태가 뚜렷한 마을은 연무읍마산리·봉동리·안심리·금곡리·마전리, 성동면 병촌리·월성리·삼산리·화성리·원봉리, 광석면 갈산리·이사리·사월리·신당리·득윤리·오강리, 노성면 교촌리, 상원면 지경리, 부적면 탑정리·부황리·덕평리·마구평리·아호리, 연산면 관동리·오산리, 벌곡면 한삼천리, 양촌면 거사리·산직리·양촌리·인천리, 가야곡면 육곡리·종연리, 은진면 연서리·와야리·방축리, 채운면 우기리·심암리, 두마면 두계리 등이다.

[현황]

현재 광석면 오강리 괴촌형 집촌은 논산 지역의 다른 전형적인 농촌 마을과 마찬가지로 구릉성 산지 아래 가옥들이 밀집하여 집중 분포해 있고, 마을 전면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오강리에는 윤황(尹煌)·윤문거(尹文擧)·윤선거(尹宣擧)·윤증(尹拯)을 배향한 노강서원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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