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947 |
---|---|
한자 | 陳璡妻潭陽鞠氏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nyeo for Jin Jin's Wif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춘진 |
성격 | 정려 |
---|---|
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57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진진 처 담양국씨의 정려.
[개설]
담양국씨는 진진의 부인이다. 임진왜란 일어나자 왜적은 논산의 가야곡까지 몰려 들어왔고, 마을 사람들은 앞산에 나가 농기구를 가지고 왜적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총칼이 없는지라 모두 후퇴하게 되었는데, 이때 국씨도 남편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 왜적이 점차 가까워 오자 국씨 부인은 남편에게 꼭 살아서 부모님과 어린 자식들이 불쌍해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며 남편을 보내고, 자신은 직접 왜적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때 왜적이 국씨 부인을 범하려고 하자, 부인은 자신의 가슴 한쪽을 직접 칼로 도려내고 왜적에게 달려들어 대항하다가 결국 왜적의 칼날에 죽게 되었다. 또한 『호서읍지』(1895) 은진현 열녀조에 의하면 국씨 부인은 돌로 제 머리를 쳐서 죽었으며, 왜적이 시신을 거두려 하던 날에도 돌이 손에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57년(효종 8)에 국씨 부인의 이러한 열행이 알려져 명정을 받게 되었다. 중수 기록에 의하면 1684년(숙종 10)과 1956년에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500m를 가서 다시 북으로 향하는 지방도 643호선으로 4㎞ 정도 가면 도로의 동측에 두월리로 향하는 소로가 있다. 이 길 입구 북동향 사면에 열녀 담양국씨 정려가 위치한다.
[형태]
정려는 정·측면 1칸으로 바닥을 시멘트로 정지한 뒤 세워졌는데, 팔각의 높은 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사면을 홍살로 시설하였다. 정려각 내부의 뒤편 상단에 ‘열녀성균진사진진처담양국씨지려숭정정유명정(烈女成均進士陳璡妻潭陽鞠氏之閭崇禎丁酉命旌)’이라고 쓴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양측면에 ‘열부국씨정려중수기-정해년(烈婦鞠氏旌閭重修記-丁亥年)’, ‘숭정갑자중수(崇禎甲子重修)’, ‘숭정오병신팔월중수(崇禎五丙申八月重修)’이라는 현판 3기가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남편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국씨 부인의 얼을 후세에 전하는 이 정려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