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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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齋-淸廉- |
영어의미역 | Yun Jeung's Integrit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종익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채록/수집상황]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였다.
[내용]
조선시대 때의 일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 내려와 살던 명재 윤증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검소함은 가세가 넉넉하지 않은 데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명재 자체가 청렴한 학자였기 때문이었다. 명재 윤증이 빈곤하게 산다는 소식이 임금에게 전해졌다. 그러자 임금은 그에게 비단과 곡식을 수레에 실어 보냈다.
비단과 곡식을 실은 수레가 마당에 들어오자 명재는 단호히 거절하며 수레를 그대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직접 정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나라의 곡식과 재물을 축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윤증의 부인이 “당신의 도포가 남루하니 비단 한 필만 받아 옷을 지으면 어떻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명재는 부인을 큰소리로 나무라며, “수레의 재물에 손도 대지 말라.”고 하면서 임금이 보내온 사람들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명재의 청렴함」의 주요 모티프는 ‘임금의 하사’와 ‘명재의 거절’이다. 명재 윤증의 검소함과 청렴성을 강조한 인물담으로, 한적한 시골에 머물며 생활하는 명재를 나라에서 불렀으나 거절하였고, 명재의 빈곤한 생활을 돕기 위해 임금이 재물을 보냈음에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하여 돌려보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