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5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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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景商業學校盟休事件 |
영어의미역 | Strike of Ganggyeong Commercial High Scho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형목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강경상업학교 학생들이 단행한 동맹휴학.
[개설]
강경상업학교 맹휴사건은 강경상업학교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통해서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발한 학생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조선 후기 이래로 전국적인 장시망(場市網)을 형성하는 등 상업도시로서 명성을 날려 왔던 강경에 1920년 3월 주민들의 기대감 속에서 강경상업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설립 당시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인 교사에 의한 모욕적이고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이 자행되고 있었다.
[발단]
일제의 교육 형태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상태에서 2학년 담임인 지하라 코지[茅原耕治]의 한국인 학생에 대한 차별 대우와 수업 중 일삼은 폭언에 대한 학생들의 분개가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경과]
1923년 6월 23일 학생들이 회의를 통해 지하라 코지의 교체 요구를 결의함과 동시에 학교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관철되지 않을 경우 같은 달 25일부터 동맹휴학에 돌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다음날인 6월 24일 다케하라[竹原]·히라다[平田]·야수나가[安永] 등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하라 코지의 생계 문제와 조선총독의 학교 방문을 이유로 내세우며 오히려 학생들의 복교만을 설득하였다. 다음날인 25일 이에 불응한 2, 3학년 학생 40여 명이 집단으로 자퇴서를 제출함과 동시에 동맹휴학에 돌입하였다.
[결과]
1923년 7월 2일 교장 타카 젠수게[多賀善介]가 학부형과 학생들을 학교에 소집하여 관련 당사자인 교사 지하라 코지의 해고를 결정권자인 도지사에 건의함과 동시에 학생들의 등교 시 주동자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다음날인 7월 3일 학생들이 등교함으로써 이 문제가 일단락되었다.
[의의와 평가]
복종과 순종만을 강요하는 식민지 노예교육에 항거한 강경상업학교 동맹휴학은 3·1운동 이후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