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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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俊榮祠堂祭 |
영어의미역 | Shrine Ritual of Gim Junyeong |
분야 | 종교/유교,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3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문준 |
성격 | 사당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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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음력 3월 10일 |
의례장소 |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3리 선충사 |
신당/신체 | 신주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3리 선충사에서 음력 3월 10일 김준영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지내는 제사.
[개설]
김준영(金俊榮)은 김녕김씨로 자는 태진(泰晋), 호는 동악(東岳)이다.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자 어가를 모시고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2등에 책훈(策勳)되었으며, 이때 영정을 그려 후세에 전하도록 하여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다. 그 후 분성군(盆城君) 김해군에 훈봉되었으며 정일품대광보국숭록대부(正一品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랐다. 묘소는 선충사 뒤 야산에 있다.
[연원 및 변천]
1675년(숙종 원년)에 충신 정문을 건립케 하고, 시호를 충정(忠貞)이라 하였다. 공이 돌아가신 후 조선조 충신 묘역인 경기도 양주(현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에 안장되었으나 정부 택지개발로 인하여 은진면 방축리로 이장되었다. 사당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옥동에 있다가 1910년경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냉천리로 옮겨졌다. 그러나 운암강 저수지 완공으로 교통이 불편해지자 1959년 3월 현 은진면 방축리로 옮기게 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선충사(宣忠祠)는 외삼문과 숭모사, 경모당, 은곡사, 내문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숭모사에는 방축리에 거주했던 김준영의 후손 158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은곡사에는 김준영의 아들, 손자, 증손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은곡사 현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선충사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을 올렸고 방풍판 시설이 되어 있다. 김준영 사당제는 사당 안에서 제향하고 있는데 영정은 없고 신주를 모시고 있다. 신주 앞에 제상을 붙박이로 짜 놓은 점이 이채롭다.
[절차]
김준영 사당제의 제례 주관자는 모두 제례복을 관복으로 갖추어 입고, 참사자는 모두 검은 양복을 갖추어 입은 후 유건을 쓴다. 제삿날은 음력 3월 10일로 제향한다. 제사 시간은 오전 8시 이후에 시작하여 약 30분간 진행한다. 제사 참여 연령대는 주로 60대 이후 80여 명 정도가 참여한다. 제수는 하루 전에 유사들이 장을 보아 마련하고 재실 관리자가 전날부터 제수를 준비한다. 제상 차림은 7시부터 상차림 준비가 시작되어 8시에 제사를 시작하며, 부녀자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김준영 사당제는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므로 출주(出主) 과정은 없다. 먼저 참신(參神)으로 종손이 신독 문을 열고 참례자 모두 두 번 절한다. 신주가 아닌 신위일 때는 분향강신 후에 참신을 하지만 신주를 출주해 모시면 참신례부터 한다. 다른 참례자는 사당 밖에 서 있으므로 밖에 서서 목례를 올린다.
다음에 분향강신, 진찬, 초헌, 독축 등이 이어진다. 종손 김규용이 집사가 따라 주는 술잔을 모사에 세 번 나누어 부어 혼백을 모신다. 종손 혼자 두 번 절한다. 종손이 집사의 도움을 받아 첫 잔의 술을 올리면 축관은 제주를 향해 앉아 축을 읽는다. 축관이 축문을 읽으면 종손은 혼자 두 번 절하고 퇴주 후 적을 물리고 초헌을 마친다. 이후 문중 대표자들이 아헌, 종헌, 첨작, 삽시정저, 합문, 계문, 진다, 철시복반, 사신, 철상, 음복 순으로 진행한다. 축문의 내용은 『사례편람』의 축문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