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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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舊石器時代 |
영어공식명칭 | The Paleolithic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이상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9년 - 삼척 지역에서 뗀석기가 처음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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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리 | |
구석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증산동 | |
구석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갈천동 | |
구석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옥원리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뗀석기를 도구로 만들어서 사용하던 시대.
[개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유인원(類人猿)에서 진화하여 도구를 제작 및 사용하기 시작한 단계에서부터 농경이나 목축 또는 토기 제작이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문화 단계로, 고인류(古人類)가 등장하는 약 2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를 말한다. 지질학상으로 신생대 제4기 갱신세(更新世)[홍적세(洪績世)]에 해당된다. 이 시대에는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서 만든 뗀석기[마제석기(打製石器)]가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석기의 전체 형태나 가공 기술 정도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석기 이외에도 고인류 화석이나 지층 구조를 통하여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후 및 생활상을 추정·복원할 수 있다.
구석기인의 생활은 주로 수렵(狩獵), 채집(採集), 어로(漁撈)에 의해 이루어졌다. 채집은 나무열매류, 견과성식물류, 뿌리성식물류, 기타 수확물 등이 대상이었다. 이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그늘을 이용하거나 들판이나 강가 주변에서 막집을 짓고 살면서 동물을 사냥하거나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먹는 것을 해결했다. 구석기인들은 다소간의 무리를 이루고 생활해야 살아 나가는 데 이로웠기 때문에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이와 함께 식량 자원을 지속적으로 획득하기 위하여 이동 생활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구석기 유적이 처음 확인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함경북도 종성군 종성면동관진 유적으로, 동물 화석과 함께 흑요석석기가 발굴되었다. 광복 이후 1962년 두만강 유역의 굴포리 유적과 1964년 공주 석장리 유적[사적 제334호] 에서 구석기가 발굴되면서 우리나라 구석기 연구가 본격 시작되었다. 1970년대 말 한탄강 유역의 전곡리 유적에서 유럽의 아슐리안(Acheulean) 문화와 계통을 같이하는 양면석기의 주먹도끼가 처음으로 출토되어 세계 구석기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100곳 이상의 구석기 유적이 발굴 및 조사되는 등 전국에 걸쳐 관련 유적이 수백여 곳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삼척 지역은 양산리[옛 축천리], 옥원리, 갈천동, 증산동 일대 다섯 곳에 구석기유적이 분포한다.
[삼척의 구석기 문화]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는 1984년 고위 해안단구(海岸段丘)면에 해당하는 강릉 심곡리 유적에서 주먹도끼·찍개·긁개 등 뗀석기가 출토되고 양양 도화리 유적에서도 주먹도끼를 비롯한 다량의 석기가 채집되는 등 구석기문화의 존재성이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구석기 유적 조사가 활발히 진행된 가운데 동해안 지역 곳곳에서 다수의 구석기 유적이 새로 발견되었다. 몇몇 유적에 대해서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동해안 구석기 문화의 성격 규명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대체로 뗀석기가 출토된 구석기 유적들은 주로 동해안과 접한 해안단구나 주요 하천변의 구릉 단구상인 하안단구(河岸段丘)에서 발견되는 입지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양양 오산리 신석기 유적 최하층에서는 토양쐐기[빙하기 때 땅이 얼고 녹은 사이로 흙이 쌓여 만들어진 지층] 구조가 발달한 고토양층(古土壤層)이 확인되고, 여러 점의 구석기가 출토됨으로써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고토양층 상부로 해안사구(海岸沙丘)가 형성되면서 서로 접촉한 퇴적 단위에서 후기구석기를 특징하는 석기인 좀돌날몸돌과 좀돌날석기를 비롯하여 흑요석석기, 수정석기 등이 신석기 조기문화 단계로 추정되는 토기와 함께 섞인 채로 출토되어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삼척 지역에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구석기시대와 관련된 유적·유물이 발견된 예가 없어 구석기문화의 공백지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원덕읍 산양리[축천리의 현재 이름]의 구릉 단구면에서 주먹도끼와 양면찍개 등 여러 점의 뗀석기가 삼척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되고 학계에 보고되면서 구석기 유적의 존재성이 알려졌다. 그 후 증산동, 갈천동, 옥원리 일대에서 새로운 구석기 유적이 발견·조사되면서 삼척 지역의 구석기 문화 기원은 적어도 중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수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영동 지역 일원에서 발견, 조사된 구석기 유적 대다수는 동해안에 인접한 해안단구의 평탄면과 주요 하천변의 낮은 구릉성 단구면에 입지하는 공통성을 보이고 있고, 삼척 지역의 구석기 유적들도 거의 동일한 입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해안단구면에 위치하는 유적은 증산동 유적과 갈천동 유적이 해당되며, 주요 하천변의 구릉 단구면에 위치하는 유적으로는 옥원리 유적Ⅰ·Ⅱ와 산양리 유적이 해당된다.
삼척 지역 구석기 유적 가운데 산양리 유적은 중기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동해안의 구석기시대 유적 대부분이 해안으로부터 약 1㎞ 안팎에 위치하고 있는데 비해 해안으로부터 약 5~6㎞ 떨어진 하안단구상에 위치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의 양상은 고성 문암리 유적[사적 제426호], 동해 발한동 유적과 구호동 유적 등과 서로 유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태백산맥을 넘나드는 이동 경로 또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과의 문화 전파 통로와 연결될 가능성도 있어 앞으로 동해안 지역 구석기 문화의 전파 경로와 전개 양상 파악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옥원리 유적 Ⅱ는 삼척 지역에서 최근 발굴 조사를 통하여 최초로 확인된 유적으로, 후기 구석기시대의 2개 문화층 존재와 더불어 석기의 제작 행위 가능성이 일부분 확인되었다. 특히 석영맥암을 돌감으로 이용하여 만든 다수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는 등 학술 가치는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동해안 구석기시대 유적들의 분포 조사와 발굴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삼척 지역의 해안단구면과 하안단구상에서 더 많은 구석기시대 유적·유물이 발견될 공산(公算)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