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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세종 지역에서 추진된 개혁 운동. 갑오경장은 1894년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약 19개월 동안 3차에 걸쳐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진행된 근대화 개혁이다. 특히 근대적 행정 체제를 도입하여 오늘날 세종 지역의 근간이 되는 행정 조직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 개화파는 동학농민군이 내세운 폐정개혁안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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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당시 개미고개를 중심으로 북한군 2개 사단과 미군이 벌인 전투. 개미고개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과 전동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6·25전쟁 당시 개미고개를 중심으로 전의면·전동면·조치원읍 일대에서 미군이 북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현재 자유평화의 빛 위령비가 설치되어 있으며, 매년 7월 11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1950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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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1904년까지 세종 지역을 포함하여 건설된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공사. 경부선 철도(京釜線鐵道) 부설 공사는 1901년에 착수하여 1904년 완공되었다. 경부선이 전의군, 연기군을 통과하기 때문에 경부철도부설공사에 전의 지역과 연기 지역의 많은 노동력이 수탈되었다. 조선 최초로 설치된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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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당시 금강에서 벌어진 전투. 개미고개 전투 이후 조치원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미군은 금강 방어를 위하여 1950년 7월 12일 금강의 남쪽인 공주와 대평리[대평동]로 이동하였다. 미군은 금강을 건넌 후 금강의 다리들을 폭파하고 금강 남쪽 제방에서 포격 준비를 하였다. 1950년 7월 13일 낮 미군 제24사단 제19연대는 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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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현 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 인근의 금강 제방이 홍수로 붕괴된 수해 사건. 세종특별자치시 대평동은 조선시대 공주목 양야리면(陽也里面)에 속하였다. 1908년에 감성장(4일, 9일)을 폐지하고 대평장(2일, 7일)을 신설하면서 5일장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청남도 연기군으로 편입되면서 명탄면과 합하여 금남면 관할이 되었다. 이때 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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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굳어 가자 일본인들은 지배자 행세를 시작하였고, 특히 조선에 이민 온 하층민의 행패가 심하였다. 청나라 군대의 진입을 막기 위하여 잠시 물러난 동학군은 이번에는 일본군과 무능한 조정에 저항하기 위하여 갑오년 9월 일제히 봉기하였다. 전라도의 남접과 충청도의 북접이 힘을 합하였으며, 2대 교주 최시형의 교령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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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1월 7일 세종 지역인 연기 복룡 일대에서 의병과 일본 경찰대가 벌인 전투.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에 분개하여 권정남(權正南)이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 표석동 일대에서 의병을 모아 봉기하였다. 임대수(林大洙)[1882~1911] 등 의병 30여 명이 조치원에서 파견된 일본군 수비대, 경찰대와 복룡(伏龍) 일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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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과 4월 세종 지역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 운동. 전의면에서는 1919년 3월 13일부터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정리 농민 이수욱이 광무황제 국장에 참례하고 3월 6일 귀향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3월 13일 전의시장에서 130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참여한 23명이 일경에 잡혀 갔다. 4월 21일 유천리(柳川里)에서 주민 1명이 단독 만세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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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기미년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후학들에게 전승하기 위한 기념식. 묵재(黙齋) 홍일섭(洪日燮)[1878~1935]과 경호(鏡湖) 장재학(張在學)[1862~1919]은 만세운동 당시 민족혼을 되살리는 데 노력한 인물들이다. 홍일섭은 시종원주사로 일하다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황제가 양위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조치원 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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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29일 조치원읍 공회당에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단체를 조직한 사건.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미·소 군정이 38도선을 경계로 각각 남과 북에서 실시되었다.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3국[미국, 영국, 소련] 외상 회의에서 연합국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여 공동 위원회와 임시 정부가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협정을 맺을 것에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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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30일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연기군 좌익 세력 중심의 운동. 연합국은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 등을 연쇄적으로 개최하였음에도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 전에 유럽과 아시아 지역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하여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전후 처리 문제에 대한 합의는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영국, 소련 간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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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년 세종 지역 정좌산 일대에서 원나라 반란군인 합단적을 물리친 전투. 침략의 원인은 원나라 내부의 황위 계승전에 있었다. 즉 1259년 몽고제국의 헌종[몽케]이 사망하자 동생들인 쿠빌라이[忽必烈]와 아리크부카[阿里不哥]가 후계자 자리를 둘러싸고 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에서 쿠빌라이가 승리하여 황위에 올라 세조가 되었다. 그리고 1271년 국호를 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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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연기 지역 주민들이 학살 당한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좌익 활동을 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향시키려는 목적에서 창설되었다. 당시 이승만 정권에서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북한군에 협조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군과 경찰을 동원하여 국민보도연맹원을 색출하고 학살을 자행하였다. 조치원경찰서는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연기 지역 주민 대상으로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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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 불만과 반란을 일으킨다는 무고를 받은 이괄이 일으킨 내란 사건.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은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조선 왕가 종실 흥안군 이제를 왕으로 추대하며 일으킨 반란이다.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를 당하자 난을 일으켜 한양까지 함락시켰다. 조선 내란으로는 처음으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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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현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 4월 일본은 20만 명의 대규모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육군 병력으로는 15만 8700명이나 되는 대군이 동원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하자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18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두 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 지방까지 유린했다. 하지만 전국 팔도 곳곳에서 의병과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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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군대해산 이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의병. 세종 지역에서는 1907년 8월 군대해산 이후 항일의병 활동이 나타난다. 세종 지역 의병은 공주와 연기·전의의 산림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일제의 추격을 피하면서 기민한 작전으로 전과를 올렸다. 을사조약이 늑결된 이후 의병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1907년 7월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8월에 일제가 군대를 해산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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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충청남도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치원~대천 간 철도 부설인가 신청. 조선 후기의 조치원은 전형적인 한국농촌의 모습으로 연기현과 청주 경계 지역이었다.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고 그 유용성이 인식되면서부터 작은 장시에 지나지 않던 조치원에 역동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1926년 2월 6일 경남철도주식회사(慶南鐵道株式會社)에서 조치원(鳥致院)~대천(大川) 간 철도설치인가 신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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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치원 일대를 지나는 조천에 제방을 축조한 공사. 조치원 지역을 지나는 조천(鳥川) 제방의 축조 기원은 1427년(세종 9)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연기현감 허만석(許晩石)은 연기현 북쪽 15리 지점 청주 경계에 제방을 쌓았다. 세종 때 허만석이 제방을 쌓아 생긴 부지가 현재 조치원읍 평리와 상리 지역으로 비정된다. 조선 초기에 축조된 조천 제방은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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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연기현감 허만석이 조천에 제방을 쌓은 일.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의 읍내 일대는 조선 전기에 저지대인 곳이었다. 허만석(許晩石)이 연기현감으로 부임한 1427년(세종 9) 무렵에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또한 계속된 가뭄으로 농사가 잘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였다. 연기현감 허만석은 연기현 치소에서 북쪽으로 15리 되는 지점에 큰 제방[堤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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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년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일대에서 신라와 당 주둔군이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한 전투. 662년 7월 신라와 당 주둔군이 웅진 동쪽의 지라성을 공격하여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한 전투이다. 660년 7월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하여 의자왕이 항복하였음에도 백제 지역의 부흥운동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662년 7월에 벌어진 지라성(支羅城) 전투로 백제 부흥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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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도청을 조치원읍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각 지방의 교통체계가 철도역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는 1896년 충청남도로 분리된 후 도청소재지가 되었으나 경부선 철도에서 벗어난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교통이 불편하였다. 따라서 철도역이 있는 곳으로 도청을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1910년 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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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년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지역에 묘역을 조성한 주체로 여겨지는 진씨 세력에 의하여 진압된 반란. 478년 백제의 병관좌평(兵官佐平) 해구(解仇)가 은솔(恩率) 연신(燕信)과 함께 대두산성(大豆山城)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해구는 웅진 천도 이후 476년(문주왕 2) 8월 병관좌평에 임명되어 백제의 정권을 주도한 인물이다. 477년 곤지를 제거한 이후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