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시대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278
한자 後三國時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대/남북국 시대/태봉,고대/남북국 시대/후백제
집필자 김명진

[정의]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이후부터 936년 왕건의 통일 이전까지 성주 지역의 역사.

[개설]

경상북도 경주 일대에서 작은 국가로 출발한 신라는 6세기부터 차츰 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고 전쟁을 일으켜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어서 676년 당나라마저 내몰고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완전하지 않아서 실제는 우리나라를 하나로 만든 것이 아니라 둘로 재편하게 만들었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698년 북쪽 지역을 차지하면서 한반도에는 두 개의 국가가 자리 잡게 되었다.

신라 후기인 889년(진성 여왕 3) 중앙 정부의 수탈에 맞서 사벌주(沙伐州)[현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원종(元宗)과 애노(哀奴)가 주동이 되어 크게 저항하였고, 중앙 정권에서 떨어져 나온 귀족이나 지방의 세력가들이 불교 사원, 해외 무역, 군진 세력, 촌주의 지위 같은 것을 배경으로 호족으로 성장하여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전국이 분열의 정국으로 들어갔는데, 그중 두각을 나타낸 대표적인 인물이 900년 후백제[당시 실제 사용한 국호는 백제]를 건설한 견훤(甄萱)과 901년 태봉[후고구려, 고려, 마진, 태봉]을 건설한 궁예(弓裔)였다. 이후 왕건(王建)이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신라, 후백제, 태봉[고려] 세 나라가 있다고 하여 이 시기를 후삼국 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북쪽에는 926년까지 발해가 있었으므로 삼국이 아닌 사국이어서 이 시기를 후다국 시대(後多國時代)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후삼국 시대 각축장의 중심]

후삼국 시대 경상북도 지역은 신라와 후백제, 태봉의 각축장이 되었다. 여러 고을에 각각 지역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고려 또는 후백제에 의탁하였다. 이 시기 성주 지역도 그 중심에 있었다. 성주 지역은 대체로 벽진군(碧珍郡)이라 불렸으며, 대표적 지역 세력으로 벽진군 장군(碧珍郡將軍) 이총언(李悤言)과 역시 벽진군 장군 양문(良文)이 있었다. 양문은 경산부 장군으로도 불렸다. 이 두 사람이 서로 어떠한 관계였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분명한 것은 이총언양문이 고려를 세운 왕건의 편에 서서 왕건이 최종 승자가 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936년(태조 19)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최종 승자가 되면서 분열의 시기는 마감되고 통일된 고려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왕건은 940년(태조 23) 군현의 명호를 대대적으로 개편할 때 성주의 지역 세력이 자신에게 적극 협조한 공을 인정하여 벽진군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여 고을의 격을 높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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