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박씨 표열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229
한자 順天朴氏表烈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규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7년 11월 22일 - 「순천 박씨 표열비」 여기동에게서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2년 - 「순천 박씨 표열비」 『성주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순천 박씨 표열비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지도보기
채록지 「순천 박씨 표열비」 채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전설
주요 등장 인물 박씨 부인|남편|시어머니
모티프 유형 열녀담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우복실 마을 언덕에 있는 열녀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순천 박씨 표열비」성주군 벽진면 운정2리 우복실 마을 여씨 집안으로 시집온 부인이 자신의 살을 베어 끓인 물을 병든 남편에게 먹여 낫게 하였지만, 결국 남편이 다시 병들어 죽게 되자 부인도 스스로 자결하여 목숨을 끊었다는 열녀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7년 11월 22일에 성주군 벽진면 수촌2리에 사는 여기동[87세]에게서 채록하여, 2012년에 성주군·성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성주군지』「순천 박씨 표열비」라는 제목으로 수록하였다.

[내용]

성주군 벽진면에 있는 운정2리 우복실 마을 입구 언덕에 열녀비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성주군 수륜면 오천동 박씨 집안에서 우복실 여씨 집안으로 시집온 부인이 있었다. 박씨 부인은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박씨 부인이 살을 베어서 남편을 먹이고 남편이 죽자 같이 따라 죽었다고 한다. 죽어서 열녀비가 세워졌으나 그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동의 모계 김홍락(金鴻洛)의 『모계문집(某溪文集)』에 수록된 「박열부전」에 그 자세한 내막이 전해 오고 있다. 김홍락은 고령과 성주 사이의 주막에서 우연히 성주에서 온 선비 한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문집에 실어 남겼다.

「박열부전」에 의하면 박씨 부인이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학질에 걸려 앓아누웠다고 한다. 부인은 백방으로 약을 구해 써 보았으나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라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부인은 학질에 사람 고기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밤에 몰래 부엌에 들어가 자신의 살을 베어 남편에게 끓여 먹였다. 부인은 남편에게 고깃국이라 속이며 “병자나 먹을까, 고기가 귀해 어른께는 올릴 고기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나흘 동안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다녔다. 그러나 결국 며칠 후 앓아눕게 되어 시어머니에게 전후 사정을 말하였다. 이에 시어머니가 부인의 친정에 말하여 약을 가져오게 하였고, 부인의 병이 낫게 되었다.

그런데 학질이 다 나은 남편이 어머니에게서 전후 사정을 듣더니, 사람 고기를 먹게 하였다고 화를 내며 부인을 친정으로 내쫓으려 하였다. 부인은 “내가 가야 남편이 마음을 잡는다”라며 친정으로 갔다. 그 뒤 남편에게 다시 병이 생겼고, 부인이 오천교 40리를 오가며 약을 구해 먹이고 고생하였으나 결국 남편은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박씨 부인은 한 번 울고는 수의를 준비해 두고, 주위를 깨끗이 정리하고 나서 그날 밤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부인은 천장에 목을 매단 것이 아니라, 천으로 목을 감아 자기 손으로 목을 졸라 죽었다고 한다. 목을 조를 때 손에 힘을 너무 주어 나중에 그 주먹을 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글의 발견자는 박씨 부인의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마을에 초라하게 방치된 열녀비를 다시 세워 그 뜻을 기리고자 하였으나, 현실적 여건이 여의치 않은 상태이다.

[모티프 분석]

「순천 박씨 표열비」의 주요 모티프는 ‘열녀’이다. 성주군 수륜면 박씨 집안에서 성주군 벽진면 우복실 여씨 집안으로 시집온 부인이 자신의 살을 베어 끓인 물을 아픈 남편에게 먹여 낫게 하였지만, 결국 남편이 다시 병들어 죽자 부인도 스스로 자결하였다는 이야기로 비극적 전설에 해당한다. 전승 집단은 「순천 박씨 표열비」를 통해 열(烈)이라는 유교적 가치 이념을 강조하고자 이를 후세에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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