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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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靑年會 |
영어음역 | Seosancheongnyeonhoe |
영어의미역 | Seosan Young Men's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지수걸 |
[정의]
1920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설립된 청년 단체.
[설립 목적]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은 육로 교통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타 지역보다 신문화 유입이 더딘 지역이었다. 서산청년회는 3·1 운동 직후 시작된 문화 정치의 일환으로 서산 지역 신문화 운동 전개를 위해 조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0년 창립 당시 서산청년회의 조직 구성이나 활동 상황은 알 수 없다. 1922년 7월 서산청년회 회장 임학수는 엡윗청년회, 천도교청년회와 함께 중앙 조선청년연합회 강연단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조직하였다. 당시 저명한 사회주의자였던 김철수가 ‘세계와 조선 청년’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으며, 서산 출신 고용환이 ‘신생활의 요건’이라는 연설을 하였다. 이런 사실은 서산 지역의 청년 단체가 중앙의 사회 운동 조직과도 일정한 연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의의와 평가]
1926년 당시 서산군에는 진흥회·서산청년회·서령청년회·제국재향군인회 서산분회·서산교육회·미성회 등의 지방 개량 기관이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인 청년들로 구성된 서령청년회가 서산청년회와 함께 지방 개량 기관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서산청년회나 서령청년회가 군청도 공인한 ‘합법적인 지방 개량 기관’이었음을 입증한다. 일제 강점기 서산 지역의 청년 운동은 해방 직후 인민 위원회 운동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