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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고아구제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462
한자 瑞山孤兒救濟會
영어음역 Seosangoagujehoe
영어의미역 Seosan Orphan rescue Society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지수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8년 1월연표보기 - 서산고아구제회 결성
최초 설립지 고아 수용소 -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성격 고아 구제 기관
설립자 지희열

[정의]

1918년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설립된 고아 구제 기관.

[설립 목적]

서산고아구제회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고아를 구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18년 1월 서산군수 지희열과 지역 내 유지들에 의해 서산고아구제회가 결성되었다. 지역 유지들이 모금한 의연금, 경성 살다렐 재단 법인의 기부금, 지방 보조비, 기타 유지들의 기부금 등으로 운영되었다. 고아구제회는 1920년대 초반 전국 단위[조선고아구제회와 도·군 지부 조직]로 조직되었는데, 서산 지역의 고아 수용소는 지금의 서산시 동문동에 위치해 있었다. 고아구제회의 사무실은 군청 내에 있었으며 회장은 군수, 부회장은 군 서무 주임, 간사는 서무계원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문 보도에 따르면, 1927년에 23명의 고아가 생활하고 있었으며 기금은 3,000원, 1년 수입은 1,000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연 수입 내역은 지방 보조비 200원, 경성 살라럴 재단 기부금 50원, 기본 재산 이자 300원, 지역 유지 기부금 400~500원이었다.

설립 초기에는 읍내리 진흥회(邑內里振興會)에서 고아 구제 사업을 담당하였으나, 1924년 5월경부터는 초가를 한 채 매입하여 그곳에서 고아들을 키우면서 일본어, 조선어, 농업 등을 지도하였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1927년경에는 월급 20원을 받는 유급 교양사(敎養師)를 1명 고용하여 보통학교 1학년 수준의 수업을 하루 8시간 정도 진행했으며, 양계, 채소 재배, 새끼 꼬기 등의 실업 교육도 실시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고아구제회의 활동을 통해 당시 고아 문제와 그 구호 실태 등에 대해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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