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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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泉庵石造佛像群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85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여성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0년 후반 - 석천암 주지 혜선이 남아 있는 불상을 모두 수습해서 석천암 대중방(大衆房)에 봉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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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석천암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85 석천암 |
원소재지 | 석천암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85 석천암 |
출토|발견지 | 석천암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85 석천암 |
성격 | 불상|석조 불상군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20㎝~40㎝ |
소유자 | 석천암 |
관리자 | 석천암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석천암(石泉庵)에 있는 조선 시대 석조 불상군.
[개설]
석천암의 주 불전인 원통보전 뒤로는 자연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석천암 석조불상군(石泉庵石造佛像群)은 이들 암괴 아래 평탄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석천암의 주지 승려 혜선에 의하면 재임 초기에 약 40여 구의 불상이 전하였다고 하나, 조사해 본 결과 약 18구의 불상만이 전해지고 있어 대부분의 불상들이 도난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남아 있는 불상들조차도 1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두부(頭部)가 결실되고 깨어진 상태이다. 1990년 후반 주지 승려 혜선이 남아 있는 불상을 모두 수습해서 석천암 대중방(大衆房)에 봉안하고 있다.
[형태]
불상의 크기는 비교적 형태가 완형에 가까운 상을 기준으로 할 때 대략 20~40㎝ 정도로 계측된다. 자세는 모두가 좌상을 취하고 있으며, 앉아 있는 매개물로 의자가 사용된 것도 확인된다. 수인(手印)은 각 상이 서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왼손의 경우는 주로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거나 혹은 촉지인(觸地印)을 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오른손의 경우는 팔을 접어 오른쪽 가슴까지 들어 올리거나 촉지인을 결하는 경우도 보이고, 악기와 같은 지물을 잡고 있는 것도 보이고 있다. 그 외 양손을 이용하여 선정인(禪定印)을 취하는 상들도 확인된다.
의습(衣褶)은 거의 모든 상이 통견의(通肩衣)를 걸치고 있는데, 법의(法衣)의 양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일반 여래상에서 볼 수 있듯이 왼쪽 가슴 부위에 원형의 승각기(僧脚崎) 치레를 이용하여 법의를 착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의 도복과 같이 오른쪽 부위의 의습을 왼쪽 의습 안으로 집어넣어 단아하게 착의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의문(衣紋)으로 볼 때는 후자의 형태로 착의하는 상이 전자의 상들에 비해 단조롭게 표현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특징]
석천암 석조불상군은 두부 및 파손이 심하여 상의 종류를 살피기가 극히 어려우나 잔존하는 석불의 숫자와 의습 등의 상태로 볼 때 여래상과 나한상(羅漢像)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 중 나한상은 도복과 같은 단조로운 문양이 시문된 법의를 착의한 상으로 볼 수 있겠다. 불상의 전체적인 인상은 작으나 당당한 형상이다. 하지만 재료의 외형적인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여 표현이 위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석천암 석조불상군과 관련된 다른 유적과 유물이 더 확인된다면 조선 시대 나한상의 양식 및 특징에 대해서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