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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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浮石寺極樂殿阿彌陀後佛圖 |
이칭/별칭 | 「부석사 아미타후불도」,「부석사 아미타불회도」,「부석사 아미타회상도」,「부석사 아미타설법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부석사길 24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용윤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취평리 부석사에 있는 아미타후불도.
[개설]
아미타후불도는 아미타여래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순간을 재현한 불화이다. 조선 시대에 아미타후불도는 사찰의 주 불전과 부속 전각인 극락전에 봉안되었으며 후불도의 규모에 맞게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팔대보살, 나한, 사천왕, 신중이나 천녀 등이 외호하는 군도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19세기에는 암자를 중심으로 감실 불단에 맞게 화면이 가로로 긴 불화 형태가 새롭게 유행하였다.
[형태 및 구성]
「부석사 극락전 아미타후불도」는 액자형으로, 화면 크기는 164.5×195.5㎝이며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다. 화면 중앙에는 하품 중생인(下品中生印)의 설법인을 한 아미타불이 구름에서 피어오른 연화 대좌 위에 앉아 있다. 여래 좌우에는 연꽃을 밟고 서서 합장을 한 보살이 있다.
보살에는 보관에 표현되는 상징물이나 지물은 없으나 아미타불의 협시 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판단된다. 아미타삼존불 주변으로는 존명을 알 수 없는 2위(位)의 보살과 십대 제자가 있으며 사천왕이 외호하고 있다. 화면 상단 좌우에는 용왕으로 추정되는 홀(笏)을 든 인물과 그릇에 쟁반을 받쳐 든 용녀가 표현되어 있다.
[특징]
「부석사 극락전 아미타후불도」는 1867년 해명당(海溟堂) 산수(山水), 춘담당(春潭堂) 봉은(奉恩) 등의 주도로 제작된 후불도이다. 산수와 봉은은 전라도에서 원담당(圓潭堂) 내원(乃圓), 해운당(海雲堂) 익찬(益讚)을 수화승으로 모시고 작업을 하다 1860년대부터 활동지를 충청도로 옮겨 활동하였다. 특히 봉은은 1861년 4월 수화승 경욱(敬旭)을 모시고 「마곡사 청련암 아미타후불도」를 그린 후 같은 해 8월 수화승으로 「마곡사 부용암 아미타후불도」를 제작하였다.
「부석사 극락전 아미타후불도」는 앞서 제작한 두 불화의 기본 구성을 따르면서도 권속인 보살을 8위에서 6위, 그리고 다시 4위로 축약하는 등 화면 구성을 간략하게 하였다. 「부석사 극락전 아미타후불도」에서 존상은 타원형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몰린 상호로 표현하고, 설채법은 주조색인 홍색에 연두색과 녹색, 청색과 하늘색을 대비하고 세부적인 장식 문양을 화려하게 사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석사 극락전 아미타후불도」의 원 봉안처는 충청남도 아산 태화산 봉곡사이며, 같은 시기에 조성된 「봉곡사 지장시왕도」는 현재 온양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불화를 조성한 산수와 봉은은 19세기 중후반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활동했던 화승으로, 특히 충청도의 공주, 서천, 아산 등지에서 불화를 조성하였다.
「부석사 극락전 아미타후불도」는 봉은이 1861년에 조성한 「마곡사 청련암 아미타불회도」와 「마곡사 부용암 아미타불회도」의 화면 구성에 근간에 두고 봉안처인 봉곡사에 맞게 간략하게 존상 구성을 변형하였다. 산수와 봉은은 금호당 약효가 등장하기 전인 19세기 중엽 충청남도에서 활동했던 화사로 「부석사 극락전 아미타후불도」는 이 시기 충청남도의 후불도의 양상을 보여주는 주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