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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사 인법당 신중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541
한자 天藏庵因法堂神衆圖
이칭/별칭 「천장사 신중도」,「천장사 신장도」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고요동1길 93-98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용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98년 5월연표보기 - 「천장사 인법당 신중도」 제작
현 소장처 천장사 인법당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고요동1길 93-98[장요리 1]지도보기
원소재지 천장사 인법당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고요동1길 93-98[장요리 1]
성격 탱화
작가 정연|문형
서체/기법 면 바탕에 채색
소유자 천장사
관리자 천장사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천장사에 있는 신중도.

[개설]

신중도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불화이다. 불법승을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신중도는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언제부터 신중도가 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제석천을 단독으로 그린 고려 후기의 제석천도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고려 후기 제석천도처럼 제석천이 단독으로 조성되면서 그와 짝을 이루는 천룡도가 제작되었으며, 18세기 중반에는 범천·제석천과 위태천을 한 화면에 그린 신중도가 유행하였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는 대자재천, 예적금강이 신중도의 새로운 주존으로 등장하였으며, 위태천의 권속으로 팔부중 외에 산신, 조왕신 등의 토속천이 추가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천장사 인법당 신중도」는 1896년 정련(定鍊)이 밑그림을 내고 문형(文炯)과 함께 조성하였다.

[형태 및 구성]

「천장사 인법당 신중도」는 액자형으로, 화면 크기는 117.2×100.6㎝이며, 면 바탕에 채색하였다. 화면은 상단에 범천과 제석천을 두고 하단에 위태천을 둔 상하 이단 구조이다. 이와 같은 신중도 형식은 금호당 약효가 그린 「갑사 대비암 신중도」[1885]를 비롯해 약효와 함께 작업했던 화승들이 선호했던 형식이다.

출초(出草)를 한 정련은 1892년 「심곡사 아미타불회도」부터 함께 작업을 한 인물로, 「천장사 인법당 신중도」는 기본적으로 「갑사 대비암 신중도」를 모본으로 하고 있다. 연꽃을 들고 있으며 제석천은 여의를 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중도에서 제석천은 연꽃이나 모란꽃을 들고 있지만 금호당 약효는 이에 구애받지 않고 「갑사 대비암 신중도」에서 국화를 든 모습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러한 표현의 자유는 정련이 제석천이 여의를 든 표현까지 가능하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범천과 제석천 주변에는 당과 번을 들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천녀가 외호하고 있으며 구름을 경계로 그 아래에는 범천과 제석천의 권속인 제왕의 복식을 한 천자와 위태천의 권속인 영지버섯을 든 산신과 관모를 쓴 조왕신 등이 배치되어 있다. 하단 중앙에는 깃털 투구에 갑옷을 입은 위태천이 금강저를 한손에 쥐고 당당하게 서있고 그 좌우로 무기를 든 신장이 자리하고 있다.

[특징]

「천장사 인법당 신중도」는 금호당 약효가 그린 「갑사 대비암 신중도」에 바탕을 두고 정련이 새로 밑그림을 그려[出草] 문형과 함께 조성하였다.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의 중심을 한 역삼각형의 구성과 존상 표현, 그리고 백색으로 강조된 구름 표현에서는 약효의 영향이 간취되지만, 천자, 산신과 조왕신, 신장, 천녀 등의 존상 표현이나 강한 음영법 사용은 정련의 화풍으로 짐작된다.

[의의와 평가]

「천장사 인법당 신중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충청남도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약효의 제자인 정련이 조성한 신중도이다. 정련은 금호당 약효와 1892년 「심곡사 아미타불회도」부터 1924년 「마곡사 대적광전 신중도」까지 함께 작업하면서 약효가 제작을 주도하는 불사에서 여러 점의 불화의 밑그림을 담당하였다. 「천장사 인법당 신중도」는 약효의 화풍을 충실히 따르면서 정련 자신의 화풍을 반영한 불화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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