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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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宣靖廟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32-9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수연 |
건립 시기/일시 | 1928년 - 선정묘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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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매년 음력 7월 7일 - 제향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0년대 - 신우의 뒤편을 두르고 있던 한석봉의 친필 병풍 유실 |
현 소재지 | 선정묘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32-9[여미리 168] |
성격 | 사당|사우 |
양식 | 맞배지붕|다포 양식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선성군(宣城君)을 기리는 사당.
[위치]
운산면사무소의 전면 주유소 사잇길로 1㎞ 정도 가면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경로당과 마을 창고 사이에 서편으로 난 소로가 나타난다. 소로를 따라 300m 가면 우측[북쪽]에 샛길이 있는데, 선정묘(宣靖廟)는 샛길을 따라 다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선정묘는 조선 정종의 4남 선성군(宣城君)과 배위 3명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선성군의 사당은 본래 경기도 파주에 있었으나, 후손이 끊기면서 서산의 후손들이 그 제향을 대신 맡게 되었다.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동족 마을로, 처음 입향한 인물은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지낸 이창주(李昌冑)[1567~1648]이다. 후손의 전언에 따르면 선성군의 신위는 파주에서 서울~수원~온양~예산~면천을 거쳐 옮겨졌으며, 곳곳에서 군인의 호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셔온 신위는 한동안 후손의 집에 임시로 보관되다가 1928년 선정묘를 건립하여 이안(移安)하였다.
[형태]
사당과 외삼문으로 구성된 남향 건물이며 솟을대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당이 있다. 사당은 2단의 단을 조성한 위에 마룻바닥은 타일을 깔았고, 4각의 높은 초석에 둥근기둥을 세웠다. 화려한 다포 양식에 지붕은 양 측면에 방풍판[맞배지붕에서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붙여 댄 널빤지]을 대목(帶木)에 의지하여 붙이고, 판자와 판자 사이에 졸대[좁고 가늘게 쓰는 재료]를 덧대어 붙였다. 시설이 있는 맞배지붕이다. 동측에 재실인 선미재(宣美齋)가 있다.
[현황]
선정묘는 조선 시대 왕자와 그 배위를 기리는 사당으로서 그 사례가 드물다. 선정묘에서는 후손들이 매년 음력 7월 7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한편 신우의 뒤편을 한석봉(韓石峯)의 친필 병풍이 두르고 있었다고 하는데, 1990년대에 유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