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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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輿- |
이칭/별칭 | 상여작모,상여장무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상여의 관리와 출납 및 출상을 담당하는 역원.
[개설]
상여장모의 주된 일은 평소 마을에서 보유한 상여를 관리하고, 초상이 발생했을 때 그 출납을 책임진 역원이다. 이를 상여작모, 상여장무 등이라고도 한다.
상여장무의 본디 뜻은 ‘상여장무(喪輿掌務)’인데 이것이 와전되어 상여장모 또는 상여작모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해석도 있다. 즉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처럼 상여장모는 ‘상여의 장모’라는 뜻으로 풀이를 하기도 한다. 장모가 사위를 아끼듯이 마을에서는 평소 상여를 잘 보관하고 출납을 담당하는 역원이 상여장모이므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후대에 끌어들여 접목시킨 설명에 불과하지만, ‘장무(掌務)’의 본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일견 그럴 듯하다.
상여장모란 명칭은 서산 지역을 비롯하여 부여·홍성·공주·예산 등에서 주로 전승되는 공동체 관행이다. 물론 마을에 따라서는 상여장모를 두지 않고 이장 밑의 소임(所任)이나 동장(洞長)이 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임무]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의 경우 초상이 나면 상여장모는 상을 당한 사람의 재종[육촌이 되는 관계] 이내의 친척을 제외한 사람 중에서 윤번에 따라 상여꾼과 발인꾼, 기타 필요한 사람을 편성하여 한 사람에게 전달한다. 이를 받은 사람은 모든 당사자들에게 알리는데, 만약 발인꾼으로 지목된 사람이 특별한 사정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자비로 사람을 사서 보충해 주어야 한다.
상여장모는 일이 매우 고되고 힘이 들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유사 시 상엿집에서 상여를 가져와 꾸미고 상을 마치면 다시 갖다 놓는 일이다.
다음은 상여장모가 요령(鐃鈴)잡이가 되어 ‘빈 상여놀이’를 하거나 상여가 나갈 때 장지까지 「상여 소리」를 부르는 일이다. 또한 망자의 시신을 광중에 안치한 뒤에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달구 소리」 또는 「회다지 소리」 역시 상여장모의 몫이었다.
마지막으로 산역(山役)에 필요한 삽·가래·괭이·지게·톱 등의 작업 도구를 관리하고, 가을걷이를 마치면 상여장모의 주도로 집집마다 짚단을 갹출하고 일손을 분담하여 상엿집에 이엉을 얹는 일을 진행하였다.
[선출]
상여장모는 연말에 열리는 대동회에서 선출한다.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서는 상여를 잘 꾸미고 성격이 차분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뽑았고, 초록리에서는 부지런하고 목청이 좋은 사람을 최고의 적임자로 여겼다. 왜냐하면 상여장모는 빈 상여를 가지고 노는 ‘상여돌리기[상여흐르기]’나 발인제를 마치고 상여가 떠나는 출상 때 요령잡이가 되어 선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상여돌리기란 출상 하루 전날 밤에 상두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횃불을 밝히며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의식을 말한다. 이는 상여를 메고 장지로 떠날 상두꾼들이 미리 발을 맞춰 보고, 또 상주들을 위로하는 ‘호상놀이’를 말한다. 따라서 상여돌리기는 상례 때마다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망자가 상노인이면서 그 자식들도 변고가 없는 다복한 가정이어야 호상놀이를 했다. 즉 이승에서 다복하게 천수를 누린 망자가 무탈하게 저승으로 돌아가게 된 것을 예축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요령을 맡은 상여장모는 평소와는 달리 흥겹게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시종 잔치 분위기 속에서 상여놀이를 하게 된다.
[사례]
상여장모는 마을에 따라 별도의 수고비가 지급되는 것이 관례이다.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서는 이장의 모조를 결산할 때 가을에는 호당 벼 2되, 봄에는 보리 2되를 각각 받았다.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의 경우 예전에는 대동회의가 열리는 연말에 호당 벼 1되를 지급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이러한 관행은 폐지되고, 그 대신 상가에서 5만원 내외를 지급한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출상 때 복인들이 상여에 거는 노잣돈 중에서 일부를 상여장모의 몫으로 주되 상두꾼들보다 후하게 받는다.
[현황]
상여장모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꽃상여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게다가 장례식장의 등장과 상례를 전담하는 상조회사의 출현은 마을 공동체의 오랜 관행으로 내려온 상여장모의 입지를 축소시켰다. 이에 따라 상여장모 제도가 마을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