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901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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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蘇萊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시흥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덕묵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4년 - 「전쟁을 예견한 소래산 바위」 『시흥 소래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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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소래산 바위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소래산 |
성격 | 병란 예고 전설 |
모티프 유형 | 소래산 바위의 이동 |
[정의]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소래산 바위에 얽힌 전설.
[개설]
소래산의 바위가 저절로 굴러 서편 옆 봉우리로 자리를 옮겨졌다는 이야기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을 예견한 것이라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전쟁을 예견한 소래산 바위」는 2004년 시흥시와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에서 편찬한 『시흥 소래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소래산에 관련된 기록 중 소래산의 바위가 저절로 굴러 서편 옆 봉우리로 자리가 옮겨졌다는 기사가 『일월록(日月錄)』에 있다.
“인천(仁川) 소래산(蘇來山)의 상봉(上峯)에 있는 돌이 절로 움직여 두 골짜기를 지나 서쪽 산기슭에 섰는데 그 사이가 거의 6~700간(間)[약 1㎞~1.3㎞]이었고 지나간 곳은 도랑을 이루어 깊이가 수 척(尺)은 되었다.”
이 기록은 시흥시가 편찬한 책에 “어느 날 소래산의 동쪽 봉우리에 있던 암석이 굴러 내리더니 골짜기에 내리던 여세로 다시 서봉(西峯)으로 굴러 올라가서 산 중턱에서 멈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암석이 굴러간 자리에 큰 고랑이 파였다고 한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괴변이 난 그해 12월 청나라 태종이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으며, 바위가 구른 것은 바로 병자호란을 예고한 것이었다.
[모티프 분석]
소래산 상봉의 바위가 굴러떨어져 멀리 이동한 것을 모티프로 하여 앞으로 일어날 병란을 예고한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