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4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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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因府年表 |
영어음역 | Inbu-yeonpy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승진 |
성격 | 고문헌|기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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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안용복(安龍福) |
저자 | 오카지마 |
저술연도/일시 | 1693년(숙종 19)|1696년(숙종 22) |
소장처 | 돗토리현 현립박물관 |
[정의]
1693년과 1696년에 오카지마가 저술한 안용복의 도일에 대한 일본 측 자료.
[구성/내용]
매해마다 기술된 『인부연표』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들은 일본까지 찾아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안용복을 ‘안핀샤’로 불렀으며, 얼굴이 검고 고향은 ‘동래부 부산 좌천1리’라 하며 상세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1693년(숙종 19) 6월 4일의 기록에는 안용복이 일본에 온 이유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6월 4일: 미자힐(米子詰)의 가등향우위문(加藤郷右衛門)과 미관충병위(尾関忠兵衛)가, 조선인 안핀샤[동래인, 42세, 일본어 통사이다]와 토라헤[울산인, 34세, 처음부터 끝까지 붓과 벼루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가 양객을 동반해 돗토리성[鳥取城] 아래 조부(鳥府)에 왔다. 당분간 본정(本町)의 2정목(丁目)에 있었던 정회소(町会所)에 기거하도록 하였다.
미루어 생각하건데, 이번에 조선인을 데리고 온 이유는, 근년 조선의 어선단이 오오야[大谷]·무라카와[村川]의 배가 죽도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도해(渡海)하여, 오오야·무라카와의 어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전에도 이를 가끔 꾸짖어 금지했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는 오히려 많은 배를 보내려는 행패를 부리게 되었으므로, 요즈음 방법은 없고, 억지로 이객(異客) 등을 데리고 돌아가 일의 순서를 자세하게 말씀드리고, 막부의 재정(裁定)을 받기 위함이라고 알고 있다.”
○ 일본어 원문
“六月四日: 米子詰の加藤郷右衛門と尾関忠兵衛が、朝鮮人アンピンシャ東莱の人、年42歳、和語通詞である)とトラヘ(蔚山の人、年34歳。最初から最後まで筆と硯を採らなかったので、その本当の字は伝わっていないという、この両客を連れて鳥府(鳥取城下)へ来た。しばらく本町の町会所(2丁目にあった)に居らせ)ることとなった。推察するに、この度、朝鮮人を連れて来た理由は、近年、彼の国の魚船団が、大谷·村川の船が竹島に到着する前に、先に渡海して、此の方(大谷·村川)の漁業を妨げるため、両家の者は大いに迷惑し、前にもこれを呵禁叱り禁止したしたけれどもまったく許諾する。様子はなく以後はかえって多くの船を渡しいよいよ狼藉の挙動が 伺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最早、方法は無く、しいて異客等を連れ帰り、ことの次第を詳しく申し上げて、幕府の裁定を受けるためと聞い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