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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내각회의 독도편입결정문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500505
한자 日本內閣會議獨島編入決定文書
영어의미역 Japanese Cabinet Decision on the Incorporation of Dokdo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승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서
관련인물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
발급일시 1905년 1월 28일연표보기
발급처 일본 정부

[정의]

1905년 독도의 일본 편입을 결정한 일본 정부 문서.

[제작발급경위]

1904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의 시마네현에 거주하는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라는 어업가가 독도 근해 지역의 물개 어로 독점권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얻기 위해 일본 농상무성에 이를 교섭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기회를 틈타 독도에 해군 감시 망루를 설치하고자 하였다. 이에 일본 해군성 수로부장은 나카이 요사부로에게 독도를 무주지로 단정하여 이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고자 한다는 청원서를 낼 것을 요청했으며,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나카이 요사부로가 낸 청원서를 승인하다는 형식을 밟아 독도를 무주지로 전제하고 일본 영토에 편입한다고 결정하였다.

[구성/내용]

-명치 38년 1월 28일 각의 결정-

별지 내무대신이 청한 안건 무인도 소속에 관한 건을 심사해 보니,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시마[隱岐島]에서 거리가 서북으로 85리에 있는 이 무인도는 다른 나라가 이를 점유했다고 인정할 형적이 없다. 지난 1905년(메이지 36)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란 자가 어사(漁舍)를 만들고, 인부를 데리고 가 엽구(獵具)를 갖추어서 해려잡이[강치: 독도에 서식하였던 물개]에 착수하였다.

또한 이번에 영토 편입 및 대하를 출원한 바, 이때에 소속 및 섬의 이름을 확정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 섬을 다케시마라고 이름하고 이제부터는 시마네현 소속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하려고 하는 데 있다. 이를 심사하니 메이지 36년 이래 나카이 요사부로란 자가 이 섬에 이주하고 어업에 종사한 것은 관계 서류에 의하여 밝혀지며, 국제법상 점령의 사실이 있는 것이라고 인정하여 이를 우리나라의 소속으로 하고 시마네현 소속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함이 무리 없는 건이라 사고하여 요청한 바와 같이 각의 결정이 성립되었음을 인정한다.

○ 일본어 원문

明治三十八年一月二十八日閣議決定

別紙內務大臣請議無人島所屬ニ關スル件ヲ審議スルニ、右ハ北緯三十七度九分三十秒東經百三十一度五十五分隱岐島ヲ距ル西北八十五浬ニ在ル無人島ハ他國ニ於テ之ヲ占領シタリト認ムヘキ形迹ナク、一昨三十六年本邦人中井養三郞ナル者ニ於テ漁舍ヲ構ヘ、人夫ヲ移シ獵具ヲ備ヘテ海驢獵ニ着手シ今回領土編入竝二貸下ヲ出願セシ所、此際所屬及島名ヲ確定スルノ必要アルヲ以テ、該島ヲ竹島ト名ケ自今島根縣所屬隱岐島司ノ所管ト爲サントスト謂フニ在リ、依テ審査スルニ明治三十六年以來中井養三郞ナル者該島ニ移住シ漁業ニ從事セルコトハ關係書類ニ依リ明ナル所ナルハ國際法上占領ノ事實アルモノト認メ、之ヲ本邦所屬トシ島根縣所屬隱岐島司ノ所管ト爲シ差支無之儀ト思考ス依テ請議ノ通閣議決定相成可然ト認ム

[의의와 평가]

「일본내각회의 독도편입결정문서」는 1877년(고종 14)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니 지적에 넣지 말라고 한 메이지 정부 최고 권력 기관인 태정관 및 내무성의 명령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으로, 일본 정부 스스로가 독도에 대한 정확한 태도를 갖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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