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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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景福寺址 |
영어공식명칭 | Gyeongboksa Temple Site |
이칭/별칭 | 경복사터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조명일 |
건립 시기/일시 | 650년 - 경복사지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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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71년 - 경복사지 폐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6년 - 경복사지 지표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9년 - 경복사지 발굴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11월 17일 - 경복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108호로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6년 11월 2일~23일 - 경복사지 1차 종합정비계획부지 내 발굴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년 9월 26일~2017년 12월 30일 - 경복사지 2차 시·발굴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경복사지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 |
소재지 | 경복사지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1 일원 |
출토 유물 소장처 | 경복사지 석등 부재 2기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 567 전북대학교 박물관 |
출토 유물 소장처 | 경복사지 기와 조각 및 자기 조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61 불교문화재연구소 |
성격 | 절터 |
소유자 | 완주군 및 사유지 |
관리자 | 완주군 및 사유지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에 위치한 삼국시대 보덕화상과 관련된 절터.
[개설]
경복사는 고구려의 승려 보덕이 백제로 옮겨와 세운 절로 임진왜란 때에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경복사는 열반종의 중심 사찰로 규모가 대단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전국 36개 주요 사찰에 이름이 올랐었다. 경복사지는 199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경복사지에서 출토된 기와의 형태가 백제의 것과 다른 것으로 보아 고구려 사찰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았다. 이후 보덕화상과 관련된 유적으로 인정하여 2000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변천]
경복사는 고구려 고승인 보덕화상(普德和尙)이 650년(고구려 보장왕 9) 백제 완산 고대산으로 옮겨와 창건한 사찰이다. 사명(寺名)은 『삼국유사』에 처음 확인된다. 해당 기록은 사찰 내 비래방장(飛來方丈)이 보덕화상의 신통력에 의해 고구려에서 옮겨온 건물로 진락공(眞樂公) 이자현(李資玄)[1061~1125]의 시가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경복사는 1424년(세종 6) 선교양종제[기존의 불교 종파들이 선종과 교종 양종으로 통폐합되었던 조선시대의 불교 종파를 일컫는 말] 아래 교종(敎宗)에 속하게 되며, 강원도 평창군 상원사(上院寺)의 속사(屬寺)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사찰은 1871년 『호남읍지(湖南邑誌)』 이후 문헌부터 폐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복사지는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그리고, 2002년 경복사지의 학술적 검토를 위한 학술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위치]
경복사지는 구이면 화원마을 마을회관에서 오른쪽 마을 길을 따라 900m 정도 올라가면 ‘경복사지 삼거리’ 안내 이정표가 있다. 여기에서 좌측길로 700m 정도 올라가면 경복사지가 있다. 경복사지는 고덕산 남서쪽에 위치하며 ‘불골’로 불리는 계곡부에 능선이 ‘勿’자형으로 있는 지형 내 평탄지 전체에 해당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경복사지는 일제강점기 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1975년 전북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해 최초로 현황이 조사되었다. 『전주·완주 지역 문화재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조사단은 경복사지에서 “高德山景福寺萬曆四十◯年”명 기와 조각을 발견해서 경복사의 위치와 1612년의 보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높이 2~6m, 길이 40m의 석축과 조선시대 건물지, 연화문 석등재 등이 파악되었다. 1979년 자료에 따르면 추정 사역에 총 17곳의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후의 조사는 1999년 완주군에서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상하보마을과 광곡리 화원마을을 잇는 임도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완주군에서 경복사지에 대한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사지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하면서 비롯되었다. 조사 결과 70년대에 비해 범위가 축소되어 있지만, 경복사지의 중심구역과 중심연대, 그리고 사찰의 중요 건물이 들어선 곳 등을 확인했다. 조사에서 드러난 건물지들은 석축을 축조하고 형성한 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산의 사면을 따라서 대지를 조성하고 가람을 구성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경복사지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출토유물 가운데 “東院”, “西院”명 기와 조각이 확인되고 있어 경복사에는 동원과 서원으로 칭하는 구역 또는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崇禎九年”(1636)명 기와를 통해 중수연대를 추정했다.
경복사지의 발굴조사는 불교문화재연구소와 문화재청의 ‘중요 폐사지 시·발굴조사 지원사업’ 일환으로 2016~2017년에 1·2차 조사로 추진되었다. 1차 조사는 2016년 11월에 시굴 조사가 시행되었는데, 석축과 건물지, 우물지, 담장, 석렬[열을 맞춰 늘어서 있는 돌] 등의 유구와 다량의 기와 조각이 출토되었다. 2차 조사는 2017년 9~12월에 이루어졌는데 조사 결과 대형 석축들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건물지, 우물지, 석렬, 가마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로 편년되는 ‘경복사(慶福寺)’, ‘중도종(中道宗)’, ‘성덕(性德)’, ‘왕(王)’명 기와 조각과 치미 조각을 비롯해 청자 베개 조각, 햇무리굽 청자 조각, 분청사기 조각, 벼루 조각 등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특히 ‘중도종(中道宗)’, ‘성덕(性德)’ 등의 명문 기와가 출토됨으로써 경복사지의 종파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고고학 자료가 최초로 확인되었다.
[현황]
경복사지는 2017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부분에 다시 흙을 덮어 발굴 유구에 대한 보존 조치가 이루어졌으며 이외 지역에도 수목을 정비해서 경복사지를 보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복사지는 보덕화상의 비래방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사역(寺域)이 운영되었으므로, 사역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사역의 범위와 변천 등이 규명되어야 하고, 이후 보존 관리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