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896
한자 改新敎
영어공식명칭 Protestant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천식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설]

개신교(Protestantism)는 가톨릭의 정책에 불복(protestantio)한 루터, 칼뱅, 쯔빙글리 등에 의해 진행된 종교 개혁 운동의 결과로 생긴 기독교 분파이다.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 가톨릭 신부인 루터가 로마 교황을 겨냥하여 「95개 조항 반박문」을 발표함으로 태동하였는데, 로마가톨릭에 대한 반대는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가 원인이었다. 이후 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독교는 구교[천주교]와 신교[개신교]로 명명되었다.

[개신교의 완주 지역 전래]

한국에는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에 입국하여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889년에는 호주장로회 선교사 데이비스가 내한하여 경상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890년에는 영국 교회의 대외지복음보급회(The Society for Propagation of Gospel in Foreign Parts) 등이 호남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이렇듯 한국에는 개신교단 종파가 여러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러 나라 또는 여러 교파가 한국에 몰려 선교를 하면서 교파 간 열띤 선교열이 자칫 서로 간 경쟁의식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초래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었다. 이에 1889년에 호주장로회 선교사 데이비스가 왔을 때 알렌, 언더우드, 헤브론, 길포드 선교사 등이 모여서 미국호주연합선교회[선교사 공의회]가 조직되었다. 그러나 1890년 호주장로회 선교사 데이비스가 세상을 떠나자 미국호주연합선교회가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892년 말에 미국남장로회 선교사들 즉, 루이스 보이드 테이트(Lewis Boyd Tate)[1862~1929]·메리 레이번(Mary Leyburn)·윌리엄 맥클리리 전킨(William McCleery Junkin)·펫시 볼링(Patsy Bolling)·마티 새뮤얼 테이트(Mattie Samuel Tate)·리니 데이비스(Linnie Davis)·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William Davis Leynolds) 등이 한국에 도착하였다. 이들을 일컬어 7명 개척 선교사[7인의 선발대]라 하였다. 이들 남장로회 선교사들의 한국 도착을 계기로 1893년 1월 28일 북장로교 선교사 빈톤 집에서 장로회 공의회를 조직하였다.

교파간 불협화음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선교구역을 지정하는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남장로교 선교지역을 호남[전라도와 충청도 일부 지역]으로 배정되었고 1893년부터 답사를 시작하였고 1896년 전주에 선교부를 설립하였다. 7인의 선발대가 한국 호남에 오게 된 경위를 보면, 1891년(고종 28) 한국 선교사로 활동하던 언더우드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귀국하여 미국 시카고 매코믹 신학교에서 한 강연을 하였다. 이때 당시 신학생이었던 테이트가 언더우드의 한국 선교 활동에 대한 강연을 듣고 감동을 받아 한국 선교를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결과이다.

테이트 선교사[한국명 최의덕]는 1894년(고종 31)부터 전주에 상주하면서 선교부(Jeonju Station)를 세우고 개신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1896년 전라북도 전주시에 첫 선교기지인 전주선교부가 설치되면서 최초 상임 선교사인 테이트 남매 선교사가 전주에 상주하였다. 이들은 전라북도 전주시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인 완주군 일부와 김제 지방 일부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계기로 전라북도 완주군에 처음으로 개신교 복음이 전파되었다. 전라북도 완주군을 포함한 전라북도 전주 동북부 지방의 선교를 처음에는 테이트 선교사가 혼자 맡아 사역하였다. 그렇지만 1896년에 부임한 해리슨 선교사와 함께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해리슨 선교사가 전라북도 완주군, 전라북도 진안군 등 일부 지역을 순회하며 선교 활동을 하였다. 본격적인 전라북도 완주군 선교는 해리슨에 이어 활동한 마로덕[Luther Oliver McCutchen] 선교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마로덕 선교사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활동하다가 1903년 말에 전주선교부로 부임하였고 이듬해인 1904년부터 전라북도 완주군을 포함하여 진안군, 장수군, 무주군에서 활동하였다. 현재 이 지역은 도로가 잘 뚫려 있어서 쉽게 갈 수 있지만, 당시 이 지역은 길이 멀고 험하여 왕래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마로덕 선교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봉동읍·삼례읍·화산면·운주면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선교하였다. 삼례제일교회를 비롯하여 전라북도 봉동읍봉상교회·서두교회,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소농교회,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교회,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학동교회 등 전라북도 완주군의 100년 이상 오래 된 교회는 거의 모두 마로덕 선교사가 설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로덕 선교사가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의 기독교 복음전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완주 지역의 개신교 현황]

전라북도 완주군 지역 개신교는 장로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장로교단으로는 예수교장로회, 기독교장로회, 감리교단, 성결교단, 침례교단, 감리교단, 개혁교단 등이 있는데, 예수교장로회에는 합동과 통합 두 개의 교단[종파]이 있다. 합동 측 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로는 구이중앙교회를 포함하여 65개 교회, 통합 측 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로는 계월교회를 포함하여 55개 교회, 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로는 율곡교회를 포함하여 17개 교회, 성결교단 소속 교회로는 남관교회를 포함하여 7개 교회, 침례교단 소속 교회로는 소향교회를 포함하여 7개 교회, 감리교단 소속 교회로는 3개교회, 개혁교단 소속 교회로는 13개 교회 등 전라북도 완주군에는 218개 교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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