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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246
이칭/별칭 바깥묵은논이,원터,승래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평화로 1889번길 157-14[용암리 516] 일대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 -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 일대에 속함
변천 시기/일시 2003년 10월 19일 -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 516 일대에서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516 일대로 개편
자연 마을 신내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평화로 1889번길 157-14[용암리 516] 일대지도보기
성격 자연 마을

[정의]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일대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신내라는 명칭은 마을 주위를 흐르는 신천에서 비롯되었다. 신내가 형성되던 시기부터 마을의 젖줄 역할을 했던 신천은 유래가 밝혀지지 않은 탓에 ‘신천(莘川)’, ‘신천(新川)’, ‘신천(信川)’ 등 각기 다른 한자로 불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으며, 신내라는 마을 명칭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신천 주변에 위치해 신내로 불렸으나, 남쪽의 묵은동[묵은논이]을 기준으로 바깥 큰 냇가에 있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바깥묵은논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조선 시대 여각[院]의 터가 있었다는 뜻의 원터로도 불렸으며, 회암사 스님들이 이곳에 들어선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승래장터·장거리·승래(僧來)라는 명칭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승래’라는 명칭은 신내가 잘못 발음되어 와전된 후, 전설이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 신내는 북쪽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이점으로 교통의 요지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신내를 중심으로 장시가 발달하게 되었다. 신내신천장[신내장]이 들어서자 주막과 여각 등이 세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장의 한자어는 『경기도읍지』 양주목에 신천장(莘川場), 『여도비지(輿圖備誌)』에 신천장(新川場)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일제가 경원선을 개통하면서 교통의 중심지가 현재의 덕정역 부근으로 바뀌자, 신내에서 열리던 시장도 새로운 교통의 중심지로 이전하였고 신천장[신내장]이라는 명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조선 시대 신내는 경기도 양주군 묵은면 일패하리에 속하였고,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양주군 묵은면 일패리와 일패하리가 병합되면서 용암리로 편입되었다.

[자연 환경]

북쪽으로 신천이 지나가며 남쪽에 약대산이 자리 잡고 있다. 동쪽에 신천청담천이 갈라지는 지점에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11년 현재에도 신천청담천이 갈라지는 지점에 위치한 신내교차로나 마을 서쪽의 원터교 등에 ‘신내’나 ‘원터’라는 명칭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개발의 영향으로 신천 주변에 중소 규모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어 주변 경관이 그리 좋지 않다. 2012년 완공 예정인 회천~상패 간 도로 공사가 신내의 동북쪽에서 진행 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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