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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07
한자 指空禪師浮屠-石燈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서지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372년연표보기 - 지공선사부도및석등 건립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363년 - 지공선사 졸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9월 26일연표보기 - 지공선사부도및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지공선사부도및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회암사 -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8-1지도보기
성격 부도|석등
관련 인물 지공선사(指空禪師)
재질 석재[화강암]
크기(높이) 3.65m
소유자 회암사
관리자 회암사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회암사(檜巖寺)에 있는 고려 후기 지공선사(指空禪師) 부도(浮屠)와 석등(石燈).

[개설]

부도는 이름 높은 승려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된 묘탑(廟塔)인데 흔히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 신라 하대에 선종(禪宗)이 도입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지공선사는 인도 출신의 승려로, 중국의 여러 지방을 순례하고 고려에 들어와서 당시 불교 사상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승이다.

[건립 경위]

지공선사는 1326년(충숙왕 13) 3월부터 1328년(충숙왕 15) 9월까지 고려에 머물면서 여러 사찰을 방문하였는데, 그 중 회암사지공선사가 불법을 펼친 중심 도량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부도를 건립하게 되었다.

『목은집(牧隱集)』의 「서천제납박타존자부도명(西天提納薄陀尊者浮屠銘)」과 『고려사(高麗史)』의 관련 기사에 의하면, “지공(指空)의 유골을 왕이 친히 왕륜사(王輪寺)로 가서 불치(佛齒)와 지공의 두골(頭骨)을 머리에 이고 궁중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로 옮겨진 지공의 유골은 양주 회암사를 비롯하여 묘향산(妙香山) 안심사(安心寺), 장단(長湍)[현재의 개성]의 화장사(華藏寺), 3곳의 부도에 봉안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회암사에 위치하는 지공선사의 부도는 1372년(공민왕 21)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순조실록(純祖實錄)』과 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의 내용 중에는 ‘이응준이라는 자가 회암사의 부도와 비석을 파괴하고 사리를 훔친 후에 그 곳에 자신의 아버지를 묻었다’고 하며, 그러한 사정으로 인해 순조가 경기감영에 명하여 지공선사의 부도와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을 1828년(순조 28)에 다시 세운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과 더불어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고 형식화된 부도의 양식적 특징을 근거로, 1372년에 제작된 부도가 파괴되자 1828년에 다시 제작된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위치]

회암사 경내에 자리하며, 지공선사의 제자인 나옹선사(儺翁禪師)의 부도와 20m 정도 떨어져서 남북 방향으로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부도의 높이는 3.65m이다. 팔각 지대석(址臺石) 위에 3단의 기단을 두고 그 위로 탑신부와 상륜부를 올렸는데, 파손이 거의 없는 완전한 상태이다. 지대석은 2매의 석재를 사용하여 팔각으로 만들고, 그 위에 4매의 돌로 팔각의 기단 하대석을 표현하였다. 기단 중대석은 가운데가 볼록한 형태의 팔각으로 측면을 둥글게 다듬었다. 탑신은 전체적으로 둥글고 넓적한 모양을 띠는데,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편평하게 다듬었다.

옥개석은 팔각이며 기울기가 급한 편이다. 옥개석에는 이전 시기의 부도에서 나타나던 목조 건축 지붕의 세부적인 표현은 없으며, 다만 합각마루를 굵은 선으로 나타내고 그 끝에 마룻장 기와를 새겼다. 상륜부의 노반은 팔각인데 2단으로 구성되었으며, 3단의 둥근 보륜을 더하여 장식하였고, 그 위에는 끝이 봉긋하게 솟은 보주를 얹었다.

[현황]

1974년 9월 2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공선사 부도(指空禪師浮屠)는 탑신부가 구형(求型)을 띠고 있다는 점이 이전 시기의 부도와 가장 다른 차이점이다. 이러한 양식적인 변화는 고려 후기 금속제 사리구 등에서 일부 유사한 양상이 나타나지만, 석조(石造)로 제작된 부도 형식으로는 지공선사 부도가 이른 시기의 예이므로 ‘구형 부도(求型浮屠)’라고 하는 새로운 형식의 시원작(始原作)이라 할 수 있다.

지공선사 부도와 가장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예는 지공선사의 제자 나옹선사의 부도가 있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楊州檜巖寺址無學大師塔)[1407년, 보물 제388호],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高陽太古寺圓證國師塔)[1385년, 보물 제749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忠州靑龍寺址普覺國師塔)[1394년, 국보 제197호], 보은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報恩法住寺福泉庵秀庵和尙塔)[1480년, 보물 제1416호], 보은 법주사 복천암 학조화상탑(報恩法住寺福泉庵學祖和尙塔)[1514년, 보물 1418] 등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까지 같은 형식의 예가 많이 제작되어 유행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1.19 내용 수정 문장 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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