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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33
한자 南陽 洪氏 湘水里 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
시대 조선/조선,현대/현대
집필자 서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478년연표보기 - 남양 홍씨 상수리 집성촌 형성
집성촌 남양 홍씨 상수리 집성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가구수 40가구
인구(남,여) 160명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 상수리에 있는 남양 홍씨 집성촌.

[개설]

남양(南陽)은 현재의 경기도 수원시와 화성시 일대이다. 남양 홍씨의 시조는 당(唐) 태종이 고구려에 파견했던 홍천하(洪天河)의 후손이라고 하나 확실치 않다. 대체로 홍은열(洪殷悅)을 기세조(起世祖)로 보고 있다. 홍은열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의 통일을 달성하여 삼중대광 태사(三重大匡太師)에 올랐다. 남양 홍씨는 남양군파(南陽君派) 등 총 16파로 구성되어 있다. 후손은 대개 경기도 화성, 강원도 명주, 충청남도 연기, 제주도 북제주 등에 대대로 살고 있다. 양주시에도 양주동·회천동·백석읍·은현면·광적면·장흥면뿐만 아니라 인접한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학곡리 일대 및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미포나루 일대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2000년 현재 남양 홍씨 인구는 11만 7638가구에 37만 9708명이다.

[형성 및 변천]

남양 홍씨 상수리 집성촌의 입향조(入鄕祖)는 남양군파의 홍지(洪智)이다. 홍지는 고려 말 임진도승(臨津渡丞)으로 있다가 조선의 개국에 반대해 낙향하였다. 홍지가 경기 연천에서 양주로 거처를 옮기면서 집성촌이 형성되었다. 이후 현손 홍춘경(洪春卿)[1497~1548]이 남면 상수리에 거주하며 선대의 묘소를 관리하였다.

홍지가 양주에 정착한 이래 후손 가운데 연이어 문과 급제자가 배출되었고, 조선의 대표적인 서인 노론 세력으로 활동하였다. 주요 인물은 전 승지 홍천민(洪天民), 전 영의정 홍서봉(洪瑞鳳), 전 판서 홍계희(洪啓禧), 헌종의 장인 홍순형(洪淳馨)이다.

[현황]

남양 홍씨 상수리 집성촌은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양주 지역의 집성촌 54개에 포함되지 않았다. 집성촌의 규모는 1953년 52가구, 1992년 약 40가구였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전통 사회의 붕괴 및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급격한 이농 현상 때문에 집성촌의 규모가 점차 축소되고 있다. 반면 양주 지역 남양 홍씨의 인구는 1985년 1,323명에서 2000년 1,464명으로 조금 증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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