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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254
한자 黃嗣永 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산3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정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775년연표보기 - 황사영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801년연표보기 - 황사영 사망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황사영 묘 발굴
현 소재지 황사영 묘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산35[좌표: N37° 44′ 28″, E126° 58′ 38″[1004tour]]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한국교회사연구소 - 서울특별시 중구 저동1가 2-3
성격 능묘|묘
양식 원형
관련 인물 황사영(黃嗣永)
소유자 창원 황씨 문중
관리자 의정부 성당

[정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순교자인 황사영(黃嗣永)의 묘.

[개설]

황사영[1775~1801]은 남인계 가문 사람으로,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이다. 세례명이 ‘알렉산델’로 알려져 왔으나 교회사가들에 의해 ‘알렉시오’로 확인되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시 천주교 교세와 순교자들의 약전 및 포교 방안 등을 담은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를 작성하여 중국 구베아 주교에게 전달하려다가 발각되어 서소문 밖에서 처형당하였다.

황사영의 백서(帛書) 작성과 신앙 활동은 생존 당시 조선 천주교회의 전개 상황 및 사회상 등을 알려 주는 한국 천주교회사 초기 자료가 되며, 교회의 평등주의를 구현하려 하였던 신앙의 귀감이라는 측면에서 교회사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황사영 백서」에 언급된, 조선에서의 포교 자유를 얻어 내기 위한 청나라의 간섭이나 서양의 무력 사용 등의 요청은 민족사적 입장에서는 외세를 끌어들이려 하였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위치]

서울 구파발이나 의정부 쪽에서 국도 39호선을 따라가다가 양주시 장흥면의 송추에서 부곡리 쪽으로 들어가면 도로변 가마골로 270번길 건물 뒤편에 황사영 묘(黃嗣永墓)가 자리한다. 건물 마당을 따라 녹색 펜스로 둘러쳐진 길을 따라가면 된다. 도로변에서 약 50m가량 거리에 묘가 있으며, 묘소는 창원 황씨(昌原黃氏) 문중 선산에 속한다.

[형태]

원형의 봉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무덤 앞에 상석이 있고, 왼쪽에는 1988년 10월 29일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가 짓고 세운 순교자 황사영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서 있다.

[금석문]

추모비 앞면에 ‘창원 황씨 알렉산델 사영(嗣永)의 묘’라고 새겼고, 뒷면에는 황사영의 생애와 백서에 관한 내용을 새겼다.

[현황]

황사영 묘는 창원 황씨 집안 후손이 족보 등을 검토하여 사후 180년 되던 해인 1980년 경기도 양주 홍복산 창원 황씨 선산에서 추정 무덤을 발굴, 석제 십자가 및 비단 띠가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오면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황사영의 토시가 든 청화 백자합이 있다. 창원 황씨 판윤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2004년 4월 6일 황사영의 7대 종손 황세환[요셉]이 한국교회사연구소에 기증하였다. 2009년 9월 1일 절두산 순교성지의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참고문헌]
  • 가톨릭정보(http://info.catholic.or.kr)
  • 천주교 의정부교구(http://u.catholic.or.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5.13 내용 수정 [현황] 창원 황씨 판윤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2004년 4월 6일 황사영의 18대 종손 황세환[요셉]이 한국교회사연구소에 기증하였다. → 창원 황씨 판윤공파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2004년 4월 6일 황사영의 7대 종손 황세환[요셉]이 한국교회사연구소에 기증하였다. 2009년 9월 1일 절두산순교성지의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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