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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잘 쏘는 농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738
한자 - 農夫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양주군지』에 수록
성격 설화|전설|일화|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한용승
모티프 유형 호미를 꺾고 서울 가기|활을 꺾어 버리고 급제하기

[정의]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도촌에서 한용승(韓用昇)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활 잘 쏘는 농부」광적면 석우리 도촌(島村)에서 살았던 양절공(襄節公) 한확(韓確)[1403~1456]의 후손 한용승이 호미를 꺾어 버린 후 서울로 가서 활을 꺾어 버리고 급제하였다는 일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활 잘 쏘는 농부」는 1992년 양주문화원에서 간행한 『양주군지』에 실려 있는데, 이는 1978년 양주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양주군지』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내용]

광적면 석우리 도촌에 한용승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한용승은 양절공 한확의 후손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다. 한용승은 어느 몹시 무더운 날에 호미로 밭을 매다가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더위에 숨이 콱콱 막히는지라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신세타령을 하였다. 한용승은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고생만 하다가 죽을 수는 없다고 하며 호미를 꺾어 버리고 서울로 향했다.

한용승은 무작정 상경하여 이리저리 장안을 헤매다가 하루는 무아관(無我館) 활터에 가니 장안 벼슬아치와 한량(閑良)들이 궁술 대회를 하는 중이었다. 한용승이 구경을 하고 있으니 한 사람이 활을 쏠 줄 아느냐고 물었다. 한용승이 조금 쏠 줄 안다고 하니 활을 주며 쏘아보라고 하였다. 한용승은 활시위를 약간 당겨 보고는 너무 약하여 못 쓰겠다고 하며 꺾어 버렸다. 사람들이 다시 활을 주면 또 꺾어 버리고 네다섯 차례를 그렇게 하였다.

그제야 사람들이 강궁(強弓)을 주어 한용승은 마음껏 활시위를 당겨 쏘았고, 화살은 과녁의 한복판을 꿰뚫었다. 만장의 궁인들이 깜짝 놀라 곧 과거가 열리니 응시해 보라고 권하였다. 한용승이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를 하였는데, 이때가 1790년(정조 14)이었다. 한용승은 금의환향을 하였으며, 이후 삼수부사(三水府使)와 숙천부사(肅川府使)를 역임하여 나라에 공헌하였다. 자손들은 서울에 살고 있으며, 그 부락을 숙천집말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활 잘 쏘는 농부」의 주요 모티프는 ‘호미를 꺾고 서울 가기’, ‘활을 꺾어 버리고 급제하기’ 등이다. 「활 잘 쏘는 농부」한확의 후손이라는 한용승의 이력과 활약상을 다룬 인물담이다. 무관이 아닌 농부가 활시위를 당기는 힘이 보통 사람보다 셀 뿐만 아니라 과녁에 정확하게 명중하는 능력까지 겸비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호미를 버리고 서울에 간 한용승은 활을 쏘는 능력이 월등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아간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위** 교훈과 사람 속에 있는 마음을 일게워주는 설화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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