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경기도 양주목 광석면[현 양주시 광적면 가납리]에 있던 다리. 가업교라는 명칭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등장한다. 가업교는 가래나무[추자목(楸子木)]가 많은 마을에서 그 나무를 이용해 만든 다리로 추측된다. 조선 후기에 가래비 혹은 가라비(加羅非)는 백석면[현 백석읍 가업리] 쪽에도 있었지만 『1872년 지방지도』 등에 등장하는 가라비는 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1397년(태조 6) 수도 한양이 만들어지면서 원래 한양[옛 명칭 양주]에 살던 사람들을 동촌 대동리로 이주시켰다가, 다시 대동리에서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견주의 읍치로 이전되면서 주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연산군 때 양주목이 폐치되었다가 1506년(중종 1) 양주목의 읍치가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으로 이전되면서 조...
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경기도 양주시의 역사. 갑오개혁으로 인하여 조선 시대의 지방 제도가 23부, 336군으로 개편되었다. 신관제(新官制)에 의한 23부제가 1895년 6월 23일에 시행됨에 따라 양주는 한성부에 소속되었다. 한성부에 소속된 군은 양주 이외에 한성·광주·적성·포천·영평·가평·연천·고양·파주·교하 등 11개 군이 더 있었다. 23부제는 18...
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법정동. 남방동(南坊洞)이라는 땅 이름은 읍내면에서 남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 방축, 즉 산성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신성(新城)에서 남방의 침략을 방어하던 곳이라 하여 원래 남방리(南防里)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남방리(南坊里)로 와전된 것이라고도 한다. 남방동의 옛 이름은 남방리였다. 남방리라는 이름은 18세기 후반의 문헌인 『호...
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법정동. 마전동(麻田洞)이라는 땅 이름은 옛날부터 삼밭이 많아서 삼밭굴·삼밭 또는 마전(麻田)이라 불리다가 정착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마포(麻圃)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마을 이름이 산삼 및 삼베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마전동의 옛 이름은 마전리이다. 마전리라는 이름은 18세기 후반의 문헌인 『호구총수(戶口總...
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법정동. 산북동(山北洞)이라는 땅 이름은 양주의 주산(主山)인 불곡산(佛谷山) 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뒤·산디·산대(山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지역은 꽃벼루우물이 있어 고려 시대부터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샘내[천천(泉川)]로 불린다. 또는 배양동(培養洞)이라고도 하는데 발음이 변하여 뱀굴로도 불린다. 산북동의 옛 이름은 산...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양주읍이란 명칭은 옛 양주의 읍치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주목의 중심지로서, 동헌·사직단·여단[돌림병 예방을 위해 나라에서 외로운 혼령을 제사지내주던 제단]·객사 등 주요 시설이 밀집되어 있었다. 삼한 시대 마한에 속하던 지역으로 475년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경기도 양주시 양주1동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어둔동(於屯洞)이라는 땅 이름은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호명산(虎鳴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해지는 시각이 빨라 쉽게 어두워지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주둔했던 곳이라 하여 애둔지·왜둔치·왜벌이라고도 하며, 조선 시대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와평동(瓦坪洞)·와평·왓벌이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어둔동의 옛...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연산군 때 양주목이 폐치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설치될 때 읍치도 지금의 양주시 유양동에 새로 조성되었다. 이에 양주목의 읍치가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읍내면(邑內面)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읍내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각종 지리지와 『호구...
1914년부터 2000년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주내(州內)’는 주(州)로 끝나는 행정 구역 단위의 중심을 뜻한다. 475년에 고구려 매성현에 속하였다가, 757년 통일 신라 내소군에 속하게 되었다. 940년 고려 견주에 속하였다가 983년 양주에 속하였고, 다시 1308년 한양부에 속하였다. 1394년 양주에 속하였다. 1895년 한양부 양주군에 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