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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309
한자 篁芳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도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적성군 남면 황방리에서 연천군 남면 황방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5년 9월연표보기 - 연천군 남면 황방리에서 파주군 남면 황방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6년 2월연표보기 - 파주군 남면 황방리에서 양주군 남면 황방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03년 10월 19일연표보기 - 양주군 남면 황방리에서 양주시 남면 황방리로 개편
법정리 황방리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가구수 149가구
인구(남,여) 337명[남자 178명, 여자 159명]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황방리(篁芳里)라는 땅 이름은 원래 감악산 아래 대나무가 무성하였고 그 모습이 흡사 꽃과 같아 황방·황뱅이·황방동이라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기록에 적혀 있는 황방리의 한자를 통해서 볼 때에는, 감악산 남쪽에 위치한 이곳에 무수히 많은 골짜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1914년 이전에는 적성 무녀촌이라고도 불렀는데, 원당저수지 북쪽에 있는 굿당의 무녀들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황방리라는 땅 이름은 18세기 후반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서는 이곳을 적성현 남면에 소재한 황방리(隍防里)로 소개하였다. 이후 1842년과 1871년에 나온 『적성현지(積城縣誌)』에서도 그대로 표기하고 있다. 한편 1914년 일제의 대대적인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의 많은 마을이 통폐합되면서 땅 이름과 영역이 많이 변하였으나, 황방리는 예외였다. 대한 제국 시기의 적성군 남면 황방리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황방리의 한자 표기가 황방리(篁芳里)로 바뀌었다는 점이 특색이다.

이후 1945년 9월 「미군정포고령」 제22호에 따라 파주군에 속하였다가, 1946년 2월 남면 주민들의 요청으로 양주군 남면에 편입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남면 황방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북쪽의 감악산 자락이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남쪽에 원당저수지와 봉암저수지가 있다.

[현황]

황방리양주시 남면의 북쪽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149가구에 337명[남자 178명, 여자 15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황방1리와 황방2리의 2개 리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 마을로는 구렁말·능골·안말·원댕이[원당리(元堂里)]·은개포·폭포동 등이 있다. 능골에는 천연기념물 제27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양주 황방리 느티나무가 있다. 현재 황방리에는 감악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두어 만든 원당저수지[1969년 조성]와 봉암저수지가 있어, 휴일만 되면 많은 강태공과 등산객으로 붐빈다. 감악산 자락에는 고려 말 충신인 남을진(南乙珍)이 은거하였다는 남선굴이 있다. 동쪽은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서쪽은 남면 신암리, 남쪽은 남면 한산리, 북쪽은 연천군 전곡읍 늘목리와 접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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