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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443
한자 廣石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정학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양주군 광석면에서 양주군 광적면으로 개칭
폐지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양주군 광석면과 양주군 석적면을 합하여 양주군 광적면 개설, 광석면 폐지
비정 지역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성격 고지명
관련 문헌 『여지도서』|『호구총수』|『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정의]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

[명칭 유래]

광석면(廣石面)은 너른 들판이라는 뜻의 ‘너븐들’을 그대로 한자로 써서 ‘넓다’는 뜻의 ‘광(廣)’자와 들판을 뜻하는 들의 와전인 돌의 한자어 ‘석(石)’자를 합하여 광석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형성 및 변천]

광석면이 언제 정확하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조선 후기에 각 군현의 면리제(面里制)가 정착되면서 양주목에도 면이 만들어지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석면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부터이다. 이후 각종 지리지와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계속해서 등장하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광석면과 석적면을 합하여 광적면이 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광적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광석면양주목의 서부에 있었던 면이다. 1789년 편찬된 『호구총수』에 기록된 양주목의 면리에 따르면, 광석면에는 가라비리·장성리·후정리·문성리·광릉리·광석리·소가리·가자동리·우곡리·삼고개리·흑석리·괴음리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양주시 광적면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호수는 228호에 인구는 1,647명[남자 937명, 여자 710명]이었다.

[관련 기록]

광석면에 관한 내용은 『여지도서』, 『호구총수』[1789],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4] 등에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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