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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472
한자 壬辰倭亂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도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임진왜란 발발
종결 시기/일시 1598년연표보기 - 임진왜란 종결
발생|시작 장소 임진왜란 - 경기도 양주시
종결 장소 임진왜란 - 경기도 양주시
성격 전쟁
관련 인물/단체 김명원|신각|이양원|이혼|고언백|도요토미 히데요시

[정의]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역사적 배경]

16세기 동아시아 사회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주변 정세의 변화 속에 크게 동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16세기 초에 일어난 삼포왜란을 계기로 일본과의 교역을 단절하여 임진왜란 직전에는 양국간의 교섭이 전무한 상태였다. 이 무렵 일본은 오랜 내란을 끝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통일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아직 세력간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대외 교역상의 문제점이 있어 이를 군사적인 대외 침략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경과]

1592년(선조 25) 4월 일본은 자신들의 내부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조선을 침략하였다. 조총이라는 최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동래포구를 통해 상륙한 일본군은 속전속결의 작전을 펼치며 전쟁 발발 20여 일 만에 도성인 한양에 도착하게 된다. 이에 선조는 몽진을 결정하여 의주로 피난길에 올랐고, 도성 방어의 책임을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에게 맡겼다.

그러나 도원수 김명원이 한강에서 후퇴하여 임진강에 진을 치고, 수성대장 이양원(李陽元)과 부원수 신각(申恪)이 한양을 포기하고 양주목으로 물러나자, 일본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한양에 들어와 종묘와 사직을 불태우고 궁궐을 노략질하였다.

도원수 김명원과 부원수 신각이 도성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자 조정에서는 김명원은 체직시키고, 신각은 군율에 따라 엄격하게 죄를 주자는 논의를 진행하였다.

당시 신각은 도성을 방어하는 도중 이양원과 함께 후일을 기약하면서 도망쳤다. 그런데 일본군들이 양주 지방을 염탐한다는 소식을 듣고 함경병사 이혼(李渾)의 군사와 합류하여 해유령에 매복하고 있다가 일본군을 급습하여 70여 명의 왜병을 죽이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게 된다. 당시 벌어진 해유령 전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5월 20일에 처음 나타난다. 즉 돌격 대장이었던 인천부사 이시언이 양주 장수원 싸움에서 적병 3명을 죽인 공이 있으니, 해유령 전투에 대한 논공행상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 도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도성 안에 있던 조선 왕실의 중요 흔적에 대한 노략질을 감행하였다. 우선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을 불태우고 종묘와 사직을 훼손시켰다. 이어 일본군은 능침을 파묘하는 만행까지 저지르게 되니, 당시 훼손된 능침은 양주목에 있는 세조의 무덤 광릉과 문정 왕후의 무덤 태릉 및 명종의 무덤 강릉, 그리고 광주에 있는 성종의 무덤인 선릉과 중종의 무덤인 정릉 등이었다.

일본군은 양주목에 있는 태릉과 강릉 등에 금은보화가 부장되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능침을 훼손하였다. 이러한 능침 훼손 소식을 접한 조정과 왕실은 침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이외에도 광릉의 정자각과 재실청이 파손되고, 선릉과 정릉이 파헤쳐지는 변고가 있었다.

이렇게 양주목에 있는 능침이 일본군에 의해 훼손되고 있을 때 능침 보호를 위해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움을 전개하였던 장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고언백(高彦白)이다. 그는 원래 교동(喬桐) 사람으로서 향리(鄕吏)로 무과에 올라 임진왜란 당시 종군하며 도원수를 따라 장령(將領)이 되어 적의 목을 벤 공이 있었다. 양주목으로 돌아가 군사를 모아 적군을 치겠다고 자청하니, 임금이 특별히 당상관의 자급을 더하여 양주목사에 임명하고 능침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힘센 사람들을 모집하여 산꼭대기의 험한 곳에 모여 웅거하면서 가끔 나가 흩어진 적군을 습격하였다. 적이 많은 군사를 풀어 수색하였으나 그는 기회를 엿보아가며 잘 피하고 숨었으므로 마침내 해치지 못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고언백은 양주 지방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세 번이나 승리를 거두었고, 토원전투에서는 62명의 일본군을 베는 전공을 올렸다.

[결과]

일본군은 관군의 패전으로 평양과 함경도의 회령까지 진격했으나, 그들이 실제로 점령·주둔한 지역은 중요 도시와 일부의 군사적인 요충지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관군 조직도 한 때의 궤멸 상태를 벗어나 곧 재편성되었다. 그러나 관군이 적에게 패하고 봉건 관료들이 도망하였을 때 그 공백을 메우며 활발히 항전한 것은 의병이었다.

의병 부대는 유학자, 전직 관료·승려 등의 지도하에 농민군이 중심이 되어 주로 적의 거점들 사이의 연락과 식량 보급을 끊으면서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유격 전술을 펼쳤다. 양주의 경우 의병 부대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양주목사 고언백의 경우 경기도방어사로서 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활약하였으며, 이때 한양·양주의 백성들이 적의 정보를 탐지하여 알려주는 등 적극 협조하고 있었던 사실에서 당시 양주민의 일본군에 대한 항전 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군이 물러가고 어느 정도 국가의 기틀이 안정되자 조정에서는 고언백을 최전방 방어사인 경상좌도병사로 삼고 논공행상을 하였다. 당시 선조고언백의 처자와 노모에게 먹을 것을 하사하였는데, 당시 고을 수령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자 파직시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고언백은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 문신들로부터 능침을 지킨 공로는 있으나, 정훈(正勳)의 명호를 받아 방자해졌으므로 죄를 받아야 한다는 탄핵을 받았고, 뒤이어 광해군이 들어서자 반역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죽음을 맞게 된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 양주에서 벌어졌던 전투와 관련된 사실들은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우선 양주시 광적면 광석리 조양중학교 서쪽에 있었다고 전하는 말무덤을 비롯하여 백석읍 홍죽리연곡리, 남면 신산리, 유양동, 만송동, 옥정동 등 곳곳에 말무덤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광적면 광석리에 있었던 말무덤은 옛날에 2개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없어지고 모두 농경지로 바뀌었다.

이외에 해유령 전투와 관련한 지명이 여러 곳에 남겨져 있는데,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효가동백석읍 연곡리 경계에 있는 구멍고개는 임진왜란 당시 해유령 전투에서 대승을 이끌었던 신각 장군이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목을 지키고 있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한자로는 군량현(軍糧峴)이라고 쓰는데, 군량미를 운반하던 고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 냅대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싸우다가 냅다 도망쳤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지며, 냅대 동쪽 골짜기인 분투골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병사들이 왜병에 대항해 사력을 다해 싸운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분투골 옆에는 임진왜란 당시 활을 쏘던 곳이라는 뜻의 활터고개, 신각 장군이 진을 쳤다고 전해지는 진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해유령 전투는 조선군이 일본군의 부산 침입 이후에 치른 접전 중 추풍역 전투 다음으로 큰 전과였다. 그리고 양주목사 고언백의 능침 보호 과정에서 보인 활약상은 그동안 위축되었던 조선군의 사기를 올리고 일본군에 대한 적개심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주위의 백성들에게도 큰 용기를 주었다. 이와 같은 양주 지역에서의 승전은 행주대첩·이순신(李舜臣)의 해전에서의 승리, 의병의 활약 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결과를 나았으며, 결국 임진왜란의 승리로 이어지게 되었다.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은 조선뿐 아니라 동양 3국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다. 명은 전란 중에 대두된 여진족의 청에 의하여 멸망하였으며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섰다. 전쟁의 직접 피해자인 조선의 경우 왕조의 교체는 없었지만, 온 국민이 당한 피해와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전란의 와중에서 국토가 황폐해지고 숱한 인명들이 살상되었으며, 기근과 전염병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양주 역시 극심한 피해를 입었던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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