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국민보도연맹 양주지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511
한자 國民保導聯盟 楊州支部
이칭/별칭 보도연맹 양주지부,보도연맹 양주지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9년 6월 - 국민보도연맹 결성
해체 시기/일시 1950년
최초 설립지 국민보도연맹 양주지부 -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 홍문거리지도보기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박우천[초대 간사장]

[정의]

1949년 6월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설립된 국민보도연맹 소속 지부.

[개설]

국민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정부의 절대 지지와 북한 공산 괴뢰 정권의 절대 반대 및 타도, 공산주의 사상의 분쇄, 남북 노동당의 멸족 파괴, 정책 폭로 및 분쇄, 민족 세력의 총결집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정식 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었으나 통상 ‘보도연맹’으로 불렸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2월에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좌익 활동 분자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었다. 이어 1949년 6월에는 반공 노선을 확고히 다지고 전향자의 보호 지도를 위해 국민보도연맹이 구성되었으며 전향한 공산 좌익분자와 반정부 혐의자가 모두 포함되면서 1950년 초에는 회원 수가 30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국가 억압 기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초대 간사장은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조직 부장이었던 박우천이었다.

[변천]

6·25 전쟁이 발발하자 관련 국민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예비 검속과 함께 대대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국민보도연맹 양주지부이승만(李承晩) 정권 하에서 중앙 조직과 명맥을 같이하였다. 당시 국민보도연맹 양주지부에 대해 양주시 유양동에 거주하는 노인호의 증언에 따르면 “보도연맹 양주지부주내면 유양리 홍문거리 앞 저자에 있었던 30평[99㎡] 규모의 건물에 ‘양주농회’라는 현판을 걸고 있었고, 지회장은 윤계종이었으며, 회원은 노승모·박응윤·정달수 등 30~40명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국민보도연맹 양주지부의 흔적은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보도연맹 양주지부는 좌익분자 색출과 자수 권유, 반공 대회와 문화예술 행사 개최를 통한 사상 전향 운동 등과 관련된 사업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민보도연맹 양주지부에서도 보도연맹원들이 분단과 이념 대립, 그리고 전쟁 속에서 희생당함으로써 현대 한국사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