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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백씨 일가 소장 자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530
한자 水原 白氏 一家 所藏 資料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서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수원 백씨 일가 - 경기도 양주시
성격 고문서
관련 인물 백동준|백유함|백선민|백시방|백시구|백원진|백이규|백흥수|백윤기
발급자 이조
수급자 수원 백씨 문중

[정의]

경기도 양주시의 수원 백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와 고서.

[개설]

수원 백씨 일가 소장 자료는 유서(諭書)·교지(敎旨)·전령(傳令) 등의 고문서와 고서로, 백유함(白惟咸)·백선민(白善民)·백시방(白時昉)·백시구(白時耈)·백원진·백이규·백흥수(白興洙)·백윤기(白胤基)에게 발급된 교지 88건과 백동준(白東俊)에게 발급된 유서 4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작위·자격·시호·토지·노비·특전 등을 내릴 때 주는 문서이다. 생원시·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교지를 백패(白牌), 문과·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교지를 홍패(紅牌), 관직을 내리는 교지를 고신(告身)이라고 한다. 유서는 국왕이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관찰사·절도사·방어사·유수 등에게 밀부(密符)를 내리면서 함께 발급하는 명령서이다. 다시 말하면 군대의 자의적 동원을 미리 막기 위해 준비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다.

[형태]

모두 낱장의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백유함부터 백윤기까지의 이력을 보면 지방군을 지휘하는 무관(武官)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방 수령을 지낸 적도 있으나 수원 백씨 일가는 대대로 무반(武班)에 속해 있었다. 공로로 조상이 추증(追贈)되는 혜택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소장 자료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황주목사[1594년]로 관리 생활을 시작한 백유함은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1594년], 오위장(五衛將)[1596년]을 지냈으며, 평시서직장(平市署直長)[1630년]으로 시작한 백선민은 종친부주부(宗親府主簿)[1633년]를 지냈다. 그리고 생원시에 합격해[1705년]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1749년]으로 시작한 백시방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1751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1754년]를 지내고 이조참의(吏曹參議)[1754년]에 추증되었다.

충무위좌부장(忠武衛左部將)[1751년]으로 관리를 시작한 백동준은 훈련원주부·순천군수[1755년], 오위장[1755년], 평안도청북방어사겸선천부사[1763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1767년], 홍주목사[1769년], 평안도 병마절도사[1773년], 함경도 병마절도사[1787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1778년], 경기수군방어사[1779년], 충무위부호군[1787년]을 거쳐 오위도총부부호군[1792년]까지 올랐다. 생원시에 합격한[1874년] 백흥수는 용양위부호군겸오위장[1874년]을 지냈으며, 갑산진병마만호[1892년]로 관리를 시작한 백윤기는 진도군수[1896년], 시종원분시어(侍從院分侍御)[1901년]를 지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후기의 대표적인 무반 가문 가운데 양주에서 세거하던 수원 백씨 일가의 발전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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