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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581
한자 全城府院君 李準 先生 影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개나리21길 61-8[신산리 25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동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9월 6일연표보기 -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81호로 지정
현 소장처 이준 사당 -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개나리21길 61-8[신산리 251]지도보기
성격 회화|영정
작가 미상
소유자 전주 이씨 전성부원군 종회
관리자 전주 이씨 전성부원군 종회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81호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이준 사당에 소장된 조선 전기 문신인 이준의 초상화.

[개설]

이준(李準)[1545~1624]은 1568년(선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자 도승지로서 죄인을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1590년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으로 전성군(全城君)에 봉해졌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운향사(運餉使)가 되어 명군(明軍)의 군량 조달을 맡았으나 병으로 은퇴하였다. 1600년(선조 33) 대사간이 되었으나 북인 홍여순(洪汝諄)의 일파로 몰려 한때 파직되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 대북의 일파가 계축옥사를 일으키고 인목 대비를 유폐하는 등 정사를 어지럽히자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였다. 1624년 세상을 떠난 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전성부원군에 추봉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에게 공신 호칭을 주고, 공신도상(功臣圖像)을 그려 봉안하는 작업이 조선 전기부터 활발하였는데, 「전성부원군 이준 선생 영정」은 공신으로 책봉될 당시 관례에 따라 그려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9월 6일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81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전성부원군 이준 선생 영정」의 크기는 가로 97㎝, 세로 178㎝이다. 머리에 오사모를 쓰고 정장 관복을 차려입은 채 오른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은 전신상으로, 두 손은 소매 안에서 마주잡고 있다. 얼굴은 묵으로 선을 그린 후 채색하였으나 손상이 심해 수리한 바 있다. 관복의 옷주름은 날카로운 직선으로 처리하였는데, 이는 당시 공신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사모는 뒷면의 아래쪽에 꽂은 사모뿔의 형식이 안정되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조선 전기 초상화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의의와 평가]

「전성부원군 이준 선생 영정」을 그린 화가나 그려진 시기에 대한 자료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영정에 나타난 16세기 후반~17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공신도상의 형식과 화법은 중요한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