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626
한자 鄭民始 墓 - 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 산9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도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800년연표보기 - 정민시 묘 조성
조성 시기/일시 1826년연표보기 - 정민시 비석 조성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745년 - 정민시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800년 - 정민시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4월 15일연표보기 - 정민시 묘 및 신도비 양주시 향토 유적 제3호로 지정
현 소재지 정민시 묘 및 신도비 -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 산92[좌표: N37° 48′ 38.4869″, E127° 02′ 15.2478″]지도보기
성격 능묘|묘|신도비|분묘
양식 단분 합장
관련 인물 정민시(鄭民始)
문화재 지정 번호 양주시 향토 유적 제3호

[정의]

경기도 양주시 산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민시(鄭民始)의 묘와 신도비.

[개설]

정민시[1745~1800]의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중초(仲初)이다. 생부는 정창유(鄭昌兪)인데 숙부인 정창사(鄭昌師)에게 입양되었다. 1773년(영조 49)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정조를 세손 때부터 보필하였으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위치]

정민시 묘 및 신도비양주시 산북동의 사장골, 온양 정씨(溫陽鄭氏) 묘역의 왼편 능선에 북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형태]

묘는 단분 합장(單墳合葬)이고, 묘표(墓表)·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망주석(望柱石)·양석(羊石)·장명등(長明燈) 등의 옛 석물을 갖추었다. 묘표는 옥개형(屋蓋形) 4면 비이다. 규모는 옥개석이 너비 109㎝, 두께 77㎝, 높이 56㎝이고, 비석이 너비 57.5㎝, 두께 30.5㎝, 높이 143㎝이다. 양석은 몸통 길이가 120㎝, 총 높이가 71㎝이다. 망주석의 총 높이는 194㎝이다. 장명등의 규모는 옥개 너비가 76×76㎝, 총 높이가 208㎝이다.

[금석문]

비석 앞면에 ‘증 우의정 행이조판서 시 충헌 정와선생 정공 민시지묘 증 정경부인 완산 이씨 부우(贈右議政行吏曹判書諡忠獻靜窩先生鄭公民始之墓贈貞敬夫人完山李氏祔右)’라 새겼다. 비문은 종자(從子)인 원임 이조판서 정상우(鄭尙愚)가 표문을 지었다. 비석이 세워진 연대는 숭정 네 번째 병술년인 1826년(순조 26)이다. 한편 비문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과 관련한 내용을 비롯하여, 정조의 즉위에 공을 세운 홍국영(洪國榮)[1748~1781]에 대한 기록도 보여 당시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현황]

1986년 4월 15일 양주시 향토 유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온양 정씨 묘역에 위치하고 있는 정민시의 묘는 다른 묘보다 정돈이 잘 되어 있으며, 묘소 아래에는 당시 국왕 정조가 하사한 ‘정와정공민시지장(靜窩鄭公民始之藏)’ 비가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정민시 묘 및 신도비정조의 총애를 받아 정조의 친필 ‘정와정공민시지장’ 글자를 하사받은 정민시의 묘로서, 정조와 관련된 역사적 명소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