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광수원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20
한자 廣水院址
이칭/별칭 광수원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산1-1전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선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광수원 터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산1-1전지도보기
성격 원 터

[정의]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원(院) 터.

[개설]

원은 본래 고려 및 조선 시대 공무 수행자의 편의를 돕기 위해 국가가 설치한 공공 시설물로 숙식이 가능하였다. 광수원 터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한 광수원(廣水院)이 있던 곳이라 하겠다.

[변천]

본래 광수원은 조선 시대 교통의 요지였던 적성현(積城縣)에 속해 있었는데, 조선 후기 『적성현지(積城縣誌)』가 작성될 때 “광수원은 남으로 25리에 있었으나 폐해져 자취가 없다”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미 폐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위치]

광수원 터양주시 남면 신암리의 윗신앙골 부근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8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과 2006년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행한 양주시 문화 유적 지표 조사 때 확인된 유적이다. 특히 1998년 조사 때 행한 인터뷰에서는 3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초석을 비롯한 건물 장대석 등이 드러나 있었으며, 그 규모는 60여 칸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는 주민들에 의해 관련 유물들이 없어진 상태이다.

[현황]

광수원 터는 확인되지만 건물 관련 유물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주변에서 조선 시대 도기와 기와 조각 일부가 채집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민간 주막의 성행으로 원의 역할이 크게 감소하면서 광수원 역시 점차 기능을 잃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고려 및 조선 시대 지방 교통로에 있었던 원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므로 광수원 터의 흔적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