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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 조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60
한자 豊壤 趙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서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풍양 조씨 - 경기도 양주시
입향지 풍양 조씨 - 경기도 양주시
세거|집성지 풍양 조씨 - 경기도 김포
세거|집성지 강원도 양구
세거|집성지 경상북도 상주
세거|집성지 전라남도 강진
세거|집성지 전라북도 군산
세거|집성지 충청남도 부여
세거|집성지 황해도 안악
세거|집성지 평안남도 용강
성씨 시조 조맹
입향 시조 조맹

[정의]

조맹(趙孟)을 시조로 하고 양주의 옛 지명인 풍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개설]

풍양(豊壤)은 경기도 양주[현 남양주시]의 옛 지명이다. 풍양 조씨의 시조는 조맹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이고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냈다. 조맹은 『풍양조씨세보(豊壤趙氏世譜)』에 따르면 원래 이름이 조암(趙巖)인데, 후삼국 시대에 한양부 풍양현[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사람으로 천마산 아래에서 은거하다가 왕건(王建)을 만나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웠고, 통합삼한벽상개국공신(統合三韓壁上開國功臣)에 오름과 동시에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이후 후손들은 조맹을 시조로 삼아 그의 출생지인 풍양을 본관으로 삼고 세계를 잇고 있다.

파는 크게 천화사전직(天和寺殿直)을 지낸 조지린(趙之藺)을 중시조로 하는 전직공파(殿直公派)와, 평장사를 지낸 조신혁(趙臣赫)을 중시조로 하는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나뉘고, 2개 파는 다시 호군공파(護軍公派)·남원공파(南原公派) 등 7개 파로 세분된다. 풍양 조씨는 원래 고려 및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유력한 가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숙종 대 이후 세도 가문으로 성장하여 재상 7명, 대제학 4명, 공신 4명, 장군 7명을 배출했다. 주요 인물로는 전 좌의정 조현명(趙縣命), 유명한 성리학자 포저(蒲菹) 조익(趙翼)[1579~1655], 일본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가져와 전한 조엄(趙曮)[1719~1777] 등이 있다.

[현황]

풍양 조씨 후손들은 주로 경기도 김포, 강원도 양구, 경상북도 상주, 전라남도 강진, 전라북도 군산, 충청남도 부여, 황해도 안악, 평안남도 용강 등에 세거한다. 전국적인 인구 규모는 1985년 25,894가구 109,434명, 2000년 35,009가구 113,798명이었다. 양주의 성씨별 인구 통계에 따르면 1985년 44가구 215명, 2000년 95가구 297명이었다. 전국적인 인구나 양주 지역 인구 모두 상승 추세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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