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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80
한자 閔無疾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398년연표보기 - 정사공신
활동 시기/일시 1400년연표보기 - 좌명공신, 여성군
활동 시기/일시 1403년연표보기 - 예문관 총제
몰년 시기/일시 1410년연표보기 - 민무질 사망
추모 시기/일시 1451년연표보기 - 신원됨
추모 시기/일시 1978년 5월연표보기 - 신도비 건립
유배|이배지 장단 - 경기도 장단군
유배|이배지 대구 - 대구직할시
유배|이배지 삼척진 - 강원도 삼척시
유배|이배지 제주도 - 제주특별자치도
묘소|단소 민무질 묘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화합로 1162번길[용암리 산52]지도보기
신도비 여흥민공무질 신도비 -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화합로 1162번길[용암리 산52]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여흥
대표 관직 우군 도총제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이고, 누나가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元敬王后)이며, 형은 민무구(閔無咎), 동생은 민무휼(閔無恤)민무회(閔武悔)이다. 부인은 청주 한씨로 한상환(韓尙桓)의 딸이다.

[활동 사항]

민무질(閔無疾)[?~1410]은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후의 태종]을 도와 정도전(鄭道傳) 일파를 제거한 공로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때는 박포(朴苞)의 반란군에 맞서 싸워 이방원을 보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좌명공신 1등에 책록되고, 여성군(驪城君)에 봉해졌다.

1402년(태종 2) 태종이 창종(瘡腫)을 앓고 있을 때 형 민무구와 함께 왕의 병세를 살피며 어린 세자인 양녕대군(讓寧大君)을 등극시켜 권력을 잡을 기회를 노렸다는 죄목으로 1407년(태종 7) 장단으로 쫓겨났다. 이어 대구, 삼척진(三陟鎭)을 거쳐 제주도로 옮겨졌다가 그곳에서 자결하라는 임금의 명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무질이 이처럼 가혹한 형벌을 받은 것은 태종의 첫째 아들이자 세자인 양녕대군의 정혼과도 관련이 있다. 태종의 제1차 선위 파동[임금의 자리를 양녕대군에게 물려주겠다고 함]으로 세자의 정혼 문제가 의정부와 대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이에 영의정부사 이화(李和) 등이 민무질, 민무구의 불손한 언행을 꼬투리 잡아 처벌할 것을 청하였다.

민무질 형제의 죄목은 선위 파동 때 태종이 보위에서 물러나기를 은근히 바랐다는 것과 이무(李茂)의 집에서 임금에 대한 불평을 토로한 것 등이었다. 옥사가 벌어진 지 이틀 후 민무질은 장단으로, 민무구는 연안(延安)으로 쫓겨났다. 19일 후 민무질은 공신녹권(功臣錄券)을 환수당하고 평민으로 강등되어 대구에 유배되었다.

민무질의 아버지 민제가 죽은 지 한 달 후인 1408년(태종 8) 10월 임금은 민씨 형제의 죄를 꾸짖는 교서를 반포하였고, 형제는 삼척진(三陟鎭)으로 옮겨졌다. 이무의 옥사 후 제주도로 옮겨졌으며, 조호(趙瑚)의 난언(亂言)[증거도 없이 사회를 혼란시키는 말]이 드러난 지 이틀 후 성석린(成石璘) 등이 엄벌할 것을 주장하여 자살하라는 극형이 내려졌다. 이에 민무질은 1410년(태종 10) 제주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무질의 비극적인 최후는 태종과 누나인 원경왕후의 사이가 나빴던 탓도 있다. 1451년(문종 1) 문종민무질을 신원해 주고, 묘가 있는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일대의 땅을 여흥 민씨에게 하사하였다. 이후 이 지역의 논밭을 경작할 수 없게 되어 지명이 ‘묵은배미’가 되었다고 한다.

[묘소]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용암리 산52번지에 묘소가 있다. 축대를 쌓아 잘 정리된 묘역에 호석(護石)으로 둘러싸인 봉분과 상석이 있다.

[상훈과 추모]

묘 앞에 비좌와 비신 및 옥개석을 갖춘 신도비가 서 있다. 비좌 전면에 5개의 탄흔이 있지만 글자가 뚜렷할 만큼 상태가 좋다. 한편 묘역 입구에는 1978년 5월 후손들이 현대적인 글귀로 비문을 적어서 세운 여흥민공무질신도비(驪興閔公無疾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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