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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796
한자 宋斯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만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02년 - 노비 문제로 다툼
묘소|단소 묘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신도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은진
대표 관직 평산 도호부사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여말 선초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은진(恩津). 판사를 지낸 송대원(宋大原) 대에 집안이 일어났다. 아들은 부사 송여해(宋汝諧), 진사 송여익(宋汝翼), 생원 송여려(宋汝勵)이다. 딸은 의정(議政)을 지낸 정광필(鄭光弼), 교리 박계한(朴季翰)에게 출가하였다. 손자는 군수 송세충(宋世忠), 참봉 송세량(宋世良), 진사 송세일(宋世一), 현감을 지낸 송세평(宋世平)이다.

[활동 사항]

묘갈에 의하면 송사민(宋斯敏)은 고려 말 공민왕 때부터 1414년(태종 14)까지 관직에 있었다. 1402년(태종 2)의 『태종실록(太宗實錄)』에 “전장군(前將軍) 송사민이 노비 문제로 다투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고, 전하는 말에 따르면 조선 태조가 한양을 새 도읍으로 정하자 송도[현 개성]의 집을 헐고 반송방(盤松坊) 유점리(鍮店里)로 옮겼다고 한다. 관직은 평산 도호부사에 이르렀다.

[묘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송시열(宋時烈)이 묘표를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쓴 묘갈이 1664년(현종 5)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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