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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825
한자 李邦益
이칭/별칭 사흥(士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정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0년연표보기 - 이방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0년연표보기 - 생원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27년연표보기 - 전설사 별좌, 사직 참봉
활동 시기/일시 1632년연표보기 - 진잠 현령
활동 시기/일시 1635년연표보기 - 충훈 도사
활동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충훈 겸 훈국 랑
몰년 시기/일시 1638년연표보기 - 이방익 사망
묘소|단소 이방익 묘 -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주
대표 관직 충훈 겸 훈국 랑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사흥(士興). 정종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상산수(商山守) 이계보(李繼保)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황해 감사 이억손(李億孫), 할아버지는 형조좌랑 이유정(李惟貞), 아버지는 영의정에 증직된 전성군(全城君) 이준(李準)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 여산 송씨(礪山宋氏)로 병사 송중기(宋重器)의 딸이다. 형은 이정익(李廷益), 이공익(李公益)이며, 동생은 이세익(李世益)이다.

[활동 사항]

이방익(李邦益)[1590~1638]은 1610년(광해군 2) 생원시에 급제한 뒤 1627년(인조 5) 전설사 별좌(典設司別坐)가 되었으나 갑자기 상을 당하였다. 그해 초 사직 참봉일 때 정묘호란이 일어나 왕족과 관료들을 따라 강화도로 피란하였다. 난이 끝난 후 강릉 참봉(康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후 장원 별좌(掌苑別坐), 전생 주부, 공조 좌랑을 지냈다.

1632년(인조 10)에 진잠현(鎭岑縣)[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수령으로 나가 2년 동안 고을을 다스렸다. 1635년(인조 13) 충훈 도사(忠勳都事)에 이어 1637년(인조 15) 금부 도사(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임금이 다시 충훈 겸 훈국 랑(訓局郞) 벼슬을 내렸다. 1년 뒤인 1638년(인조 16) 49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무덤은 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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