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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863
한자 趙益貞
이칭/별칭 이원(而元),공숙(恭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36년연표보기 - 조익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53년연표보기 - 진사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65년연표보기 - 식년문과 정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66년연표보기 - 『동국통감』 편찬
활동 시기/일시 1467년연표보기 - 예문관 봉교, 승정원 주서
활동 시기/일시 1469년연표보기 - 사헌부 지평, 봉렬대부, 시강원 문학, 『세조실록』 편찬
활동 시기/일시 1470년 2월연표보기 - 형조 참의
활동 시기/일시 1481년 12월연표보기 - 한성부 좌윤, 한평군에 책봉
활동 시기/일시 1482년 3월연표보기 - 이조 참판
활동 시기/일시 1489년연표보기 - 호조 참판,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옴, 사헌부 대사헌, 강원도 관찰사
활동 시기/일시 1491년연표보기 - 사헌부 대사헌, 예조 참판
활동 시기/일시 1492년연표보기 -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활동 시기/일시 1495년연표보기 - 한성부 좌윤, 공조 참판
활동 시기/일시 1495년 8월연표보기 - 공조 참판
활동 시기/일시 1497년연표보기 - 오위도총부 부총관
몰년 시기/일시 1499년연표보기 - 조익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35년연표보기 - 신도비 건립
부임|활동지 강원도
부임|활동지 경상도
묘소|단소 조익정 묘 -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102-1지도보기
신도비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102-1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풍양
대표 관직 공조 참판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이원(而元). 증조할아버지는 조신(趙愼)이고, 할아버지는 공조 좌랑 조안평(趙安平)이며, 아버지는 한산군(漢山君) 조온지(趙溫之)이다. 어머니는 해주 오씨(海州吳氏)로 예빈 판사(禮賓判事) 오축(吳軸)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판관 권상량(權尙良)의 손녀이고, 별제 권관(權關)의 딸이다. 아들은 조팽(趙彭)과 조담(趙聃)이고, 네 딸은 각각 나세걸(羅世傑), 신명희(申命羲), 최숭한(崔崇漢), 권복생(權福生)에게 출가하였다.

[활동 사항]

조익정(趙益貞)[1436~1498]은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465년(세조 11) 식년문과 정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7월 수찬 낭관(修撰郞官) 벼슬을 받아 『동국통감(東國通鑑)』 편찬에 참여하였다. 1467년(세조 13) 예문관 봉교, 승정원 주서, 1468년(세조 14) 1월 종묘서(宗廟署)에 임명되어 제기(祭器)를 관리하였다. 같은 해 예종이 즉위하고 10월에 남이(南怡)의 옥사가 일어났는데, 이 사건을 잘 처리한 공으로 익대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1469년(예종 1) 2월 사헌부 지평이 되고, 3월 봉렬대부(奉列大夫) 품계가 더해졌으며, 시강원 문학(侍講院文學)에 임명되었다. 4월에는 춘추관 수찬관으로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여 상으로 망아지를 받았다. 1470년(성종 1) 2월 통정대부(通政大夫)로서 형조 참의에 임명되었고, 3월에는 도사 선위사(都司宣慰使)에 올랐다. 1481년(성종 12) 12월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으로 한평군(漢平君)에 봉하여지고, 1482년(성종 13) 3월 이조 참판이 되었다. 10월에는 독권관(讀券官)이 되어 과거 시험을 감독하였다.

1489년(성종 20) 호조 참판으로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9월 사헌부 대사헌, 10월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1491년(성종 22) 사헌부 대사헌, 예조 참판, 1492년(성종 23)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이어 1495년(연산군 1) 한성부 좌윤, 8월에는 공조 참판이 되었다. 1497년(연산군 3)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겸하였다. 1499년 춘추관 동지관사(春秋館同知館事)로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수에 참여하였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산102-1번지 풍양 조씨 한산군파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태상시(太常寺)에서 논의하기를 “원래의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견고히 하였으니 공(恭)이고, 강직한 덕을 잘 이루었으니 숙(肅)이다.”라고 하여 공숙(恭肅)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735년(영조 11) 신도비가 건립되었다. 홍서봉(洪瑞鳳)이 비문을 짓고, 조종운(趙從耘)이 글씨를 썼다. 신도비의 탁본이 양주문화원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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