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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0922
한자 金仁凡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양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김인범 출생[추정]
활동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 김봉기 의병 부대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07년 9월 26일 - 남한산성에서 일본군과 교전
활동 시기/일시 1908년 11월 7일연표보기 - 5년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미상
추모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활동지 남한산성 - 경기도 광주시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김인범(金仁凡)경기도 양주군 남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김인범은 김봉기(金奉基)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경기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07년 우리 민족의 군사무력(軍事武力)을 약화시키기 위해 7월 20일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 7월 24일에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였으며, 그해 8월 1일 대한 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그 직후 김봉기 의병장은 이천(利川)을 중심으로 경기도 남부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이근풍(李根豊)·주창룡(朱昌龍) 등과 함께 경기도 광주(廣州)·용인(龍仁)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봉기하였다.

김인범은 1907년 9월 26일 김순태(金順泰) 등 동료 의병 20여 명과 함께 김봉기 의병 부대에 가담하여 이천·양주·양근(楊根)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경기도 광주군의 남한산성 밑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어 1908년 11월 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5년을 선고 받아 고초를 겪었다. 김인범의 정확한 생몰년은 미상이지만, 1908년 당시 30세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879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재판 이후 김인범이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상훈과 추모]

1995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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