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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301503
한자 弘竹3里 - 山祭
이칭/별칭 산치성,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 천죽마을
집필자 서영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리 천죽마을 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0월 1일 밤 9시

[정의]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홍죽3리 천죽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홍죽3리 천죽 산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월암산 3부 능선의 산제당에서 월암산 산신에게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요로움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산치성’, ‘산제’ 등이라고도 한다. 산제사를 지내는 날은 음력 10월 1일로 정해져 있는데, 해가 저물 무렵 산에 올라가서 메를 짓고 기다리다가 밤 9시가 넘으면 산제를 지냈다. 이웃하고 있는 홍죽2리의 주민 역시 월암산 산신에게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산제[홍죽2리 홍죽 산제]를 지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홍죽3리 천죽 산제는 마을 사람들의 평안과 안녕, 무사고를 빌며 월암산 산제당에서 산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행사이다. 홍죽리에서 지내는 산신제 중에서는 홍죽3리 천죽마을의 산신제가 가장 크게 치러졌으나 이제는 많이 변모하였다. 교인들은 한 마을에서 거주해도 제의에 참석하지 않고 제물도 먹지 않아 산신제의 의의가 퇴색되었으며, 차츰 그 명맥이 사라져갈 것으로 보인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월암산 3부 능선 중턱의 넓은 공터에 자리한다. 원래 산제당은 토담에 초가로 지붕을 이은 건물이었다. 1950년대 중반 슬레이트로 지붕을 개량하여 사용하던 당집이 너무 오래되어 허물어지자 1996년 마을 기금으로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건물인 산제당을 건립하였다.

산제당은 가로, 세로 6m 가량의 정방형이고, 높이는 340㎝ 정도인 건물이다. 산제당의 지붕은 파란색으로 칠해졌고, 측면에는 창문 하나가 달려 있으며, 쌍여닫이 쇠문으로 된 출입문은 남서 방향으로 나 있다. 산제당 앞은 넓게 시멘트로 포장하였고, 옆에는 수령 2~3백 년 정도 되는 커다란 굴참나무가 있다. 산제당은 매우 영험한 곳이어서 이 근처에는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않도록 해 왔다. 산제당 주변의 참나무나 홰나무 가지가 떨어져도 주어다 불쏘시개로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산제당을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천죽마을 산제당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1970년 경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할 상수도 작업을 하다가 산제당 앞에서 폭약을 터트렸는데, 그 후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음독자살을 하거나 사고로 자꾸만 비명횡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산신이 노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1977년 광적면에서 박수무당을 데려다가 3일간 대둥굿을 했는데, 그 이후로 마을이 평온해졌다고 한다.

[절차]

산제일을 하루 앞둔 음력 9월 그믐날 마을에서는 상하주 1명과 부하주 2명 등 산제를 지낼 제관 3명을 선출한다. 생기복덕이 제일 좋은 사람을 고르는데, 이때 대상자의 부인 생기복덕까지 본다. 만일 이 과정에서 마을에 부정한 일이 일어나면 산제를 연기한다. 아이를 낳으면 산부정이라 하여 3일을 연기한다. 사람이 죽으면 7일이 지난 다음 다시 날을 잡아 제를 지낸다. 지난 2000년과 2001년, 2002년에 치러진 산제사 자료를 바탕으로 이 마을의 산제사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관을 선정하면 부정한 일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그 사람의 집 대문 앞에 황토를 뿌린다. 제물은 하주 집의 부인이나 여자들이 맡아서 준비하며, 부하주 중 한 명은 장에 나가 제물을 구입해 온다. 제당 주변 청소는 상하주가 맡아서 한다. 상하주는 제의가 있기 전날 산제당 앞에 있는 우물을 청소하고 조라술을 빚은 단지를 산제당에 놓고 내려온다.

천죽마을에는 산제사와 관련된 서류가 전해 내려온다. 여기에는 제물상 차림과 제례 순서[홀기(笏記)], 제물 목록, 축문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물 장만은 먼저 돼지를 구하는 일로 시작한다. 본래 흑돼지만을 사용했으나 지금은 구하기 어려워 축사의 돼지 중에서 토실한 것을 골라 쓴다. 돼지는 제의 당일 바로 잡으며, 제사상에 올릴 때 산제당에 돼지의 피가 흐르면 안 되므로 불에 살짝 굽는다. 닭도 수컷으로 좋은 놈을 골라 상에 올리며, 닭은 삶되 앉아 있는 모양으로 만든다. 그 나머지 제물은 화주 한 사람이 백석읍에 나가 장을 봐 온다.

제의 당일인 10월 초하루 낮에 찹쌀과 콩으로 용떡을 만든다. 찹쌀로 용의 몸통을 만들고, 콩으로 눈알을 박아 완성한다. 닭을 삶고 나머지 제물을 준비하는데, 이때 어떤 제물이든 고춧가루는 사용하지 않고 실고추만을 사용하는 점이 특이하다. 번이나 두부적(豆腐炙)은 하주의 부인네들이 마스크를 쓰고 입을 가린 채로 정성스레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한 팥 시루떡과 백설기를 만들어 올려놓으며, 용떡은 하주 부인이 각기 하나씩 만들어 사용했다. 이 외에 우족 하나, 소간, 북어, 포, 다시마, 녹두, 계란, 그리고 대추, 밤, 감, 배 등의 삼색실과를 준비한다.

산제를 지내기 위해 산제당에 오르기 전인 저녁 6시 경에 저녁 식사를 하는데, 여기에는 고기를 올릴 수 없다. 채소만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준비해 놓은 제물을 향해 입맛을 다시면 부정을 탄다고 해서 모두가 조심하고 주의를 한다. 한편 이 시간에 하주 한 사람은 축문을 쓴다.

제물이 준비되면 날이 어둡기 전에 산으로 올라가 제를 지낼 때까지 산제당에서 기다린다. 해가 떨어지면 세 쌍의 하주 부부가 산제당으로 오른다. 산제당에 장작불을 피워 사람들이 추위를 녹일 수 있도록 한다. 이때 하주들은 산제당으로 들어가 주저리 안에 만들어 둔 조라술을 꺼내 오고, 술을 걸러 산제당 안에 놓고 나온다. 그리고 신령이 오기를 기다린다. 나뭇잎이 흔들리거나 불기운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으로 신의 강림을 알아차린다고 한다.

제물의 진설은 저녁 8시 경에 시작하는데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한다. 제물을 차릴 때 상이 작아서 통상 용떡이나 백설기는 팥 시루떡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노구메를 짓기 시작한다. 제상에 차리는 제물은 일반 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통돼지는 제단 밑에 따로 진설한다. 그리고 닭이나 어적, 간납 등은 뒷줄 중간에 진설한다.

제물을 다 차려 놓으면 남자들만 산제당 안으로 들어가 제사를 지낸다. 제를 지낼 시간이 되면 제관들은 찬물로 세수를 하고 노구메를 진설한다. 제상에 제물을 진설한 상태에서 먼저 분향으로 제사를 시작하고 모사한 다음 강신 재배를 한다. 그리고 잔을 올린 다음 메 뚜껑을 열고 수저를 꽂는다. 이어 헌작을 하고 모든 제관이 부복을 한 다음, 축관은 축문을 읽는다. 독축이 끝나면 다시 재배를 한다.

재배 다음에 합문의 절차에 따라 조용히 있다가 다시 메의 뚜껑을 덮고 재배를 한다. 절은 하주 세 명이 한꺼번에 하며, 이후 소지를 올린다. 이어 부하주들이 각자 소지를 올리는데, 마을 주민을 대표하는 대동 소지를 올린 다음 하주들은 각자 자기 소지를 올린다. 이 소지 절차가 끝나면 고수레를 하고 바로 철상을 한 뒤 청소를 한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술 한 잔을 뒤편에 따라 놓는다. 그러나 제관들은 산에서 음복은 하지 않으며, 곧바로 내려와 상하주 집에서 음복을 한다. 제를 지내고 산에서 내려오면 대략 밤 10시 경이 되는데, 간단하게 음복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축문]

1990년대 말 홍죽3리 천죽마을에서 치러진 산제사의 축문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維歲次) 정축시월(丁丑十月) 병오삭(丙午朔) 초일일(初一日) 병오(丙午) ○○○, ○○○, ○○○ 등 외 동민일동 삼가 고합니다. 월암산 신령님 저희 주민과 가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앙과 고난을 멀리하여 주십사 주육이며 떡과 과일로 동민 일동이 뜻모아 정성껏 드리오니 흠향하옵소서.”

[부대 행사]

산제를 지내고 내려온 다음날 날이 밝으면 다시 모여 음복을 한다. 그리고 산제에 쓴 제물을 조금씩 나누어 집집마다 돌린다. 산제를 지내는 데 든 비용은 아침에 결산하여 일정하게 분담하도록 하는데, 이때 분담액을 가지고 와서 제물을 나누어 먹는다. 그러나 교인들은 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려 하며, 제물도 먹지 않으려고 하고, 경비 추렴에도 소극적이었다.

[현황]

2000년과 2001년, 2002년에도 천죽마을에서는 산제사를 지냈으며, 그 이후로도 산제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천죽마을의 산신제도 언제 그 명맥을 완전히 잃어 자취를 감출 지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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