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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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鷲寺記 |
영어의미역 | Record of Youngchuk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채상식 |
[정의]
고려시대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영축사와 관련한 기록 문헌.
[개설]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영축산에는 자장이 통도사를 창건함으로써 계율 사상을 중심으로 한 불교 흐름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자장과 비교하여 거의 동시대이거나 한 세대 뒤의 인물인 낭지를 필두로 한 또 다른 불교 흐름도 공존하고 있었다. 「영축사기[靈鷲寺記]」와 이를 인용한 『삼국유사』의 기록은 후자의 사례를 말해주고 있다. 낭지의 사례와 통일신라 원성왕대 국사로 봉해진 연회(緣會)가 은거했던 이야기 속의 영축산의 분위기는 자장이 창건한 통도사의 영축산과는 판연히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낭지는 영축산에 머물면서 『법화경』을 외우고 신통을 행사하였는데, 구름을 타고 중국 청량산에 가서 강설을 듣고 돌아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의상의 제자로서 『추동기(錐洞記)』를 지은 지통(智通)은 의상에게 제자로 가기 전에 낭지의 제자였으며, 원효도 낭지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하여진다.
[구성/내용]
「영축사기」는 『삼국유사』권5, 피은(避隱) 제8, 낭지승운보현수(朗智乘雲普賢樹)에 유일하게 보이는 자료일 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삼국유사』에 이르면, “낭지가 일찍이 말하기를 ‘영축사 터는 바로 가섭불(迦葉佛) 당시의 절터’라고 하고, 땅을 파서 등항(燈缸) 2개를 얻었다. 원성왕 때 대덕(大德) 연회(緣會)가 영축산에 와서 살면서 낭지의 전기를 지으니 세상에 유행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영축사와 관련한 사실과 내용에 대해서 정확히 전하여지는 기록은 없으며, 다만 영축사와 관련된 신라 문무왕 때의 고승인 낭지의 이야기만이 전해지고 있다.